가족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시네마 서비스

변승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가족’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족 부양의 의무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두 남녀(인구-한석규 분, 혜란-김지수 분)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두었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일부 장애계는 비판 성명(‘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지적장앤인을 사회에서 격리시킨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문화적 학대행위를 중단하라!’-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을 내었다. 남자 주인공의 형(인섭-이한위 분)이 정신장애인으로 등장하는데, 이 사람을 가족의 부담이 되는 존재로 그리고 ‘무능력자, 섹스탐닉자’ 등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논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오아시스>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이런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예컨대, 그들의 주장처럼 정신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하여, 이것이 곧 이 영화를 본 비장애인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랑할 때...> 홈페이지나 영화 관련 기사나 감상을 담은 개인 블로그를 보면, 대부분 배우의 연기에 주목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그들의 비판은 과도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가 그리는 장애현실에 대해서 관객은, 혹은 장애운동진영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시네마 서비스

또한, 그들의 주장처럼 실제 영화가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그렸는가 라는 문제도 남아 있다. 그들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는데, 하나는, 장애인 형으로 인해 엄마가 죽고 남동생은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꼼꼼히 보면, 정신장애인인 인섭(형)이 일으킨 사건(집에서 나가 버린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된 것이지, 단순히 ‘형’ 때문에 엄마가 죽고 동생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인섭을 ‘섹스탐닉자로 묘사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인섭이 성(性)에 관련한 행동-야한 만화책/잡지를 보거나 자위하는 장면-은 그의 전체 등장 장면 20회 중, 4회에 불과하다. 이 네 장면을 등장시켰다고 해서 ‘정신장애인인 인섭을 섹스탐닉자로 묘사했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성과 관련한 행동을 등장시킨 것’을 ‘섹스탐닉자로 묘사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시네마 서비스

물론,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매우 심각하다. 이 말은 그들 중 누군가가 이른바 반사회적 행동을 했을 때, 이른바 ‘정상인’들은 편견에 바탕하여 낙인을 찍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범죄율이 내국인에 비해 매우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범죄가 일어나서 언론에서 다루었을 때, 갑자기 우리 사회에서 ‘불법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집단 이지메’ 현상이 일어나는 것과 그 속성이 동일하다. ‘정신장애인’이라는 분류되는 집단에 대해 이른바 ‘정상인’들이 내보이는 기본적 태도의 속성이 ‘편견’과 ‘낙인’의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부 장애계의 비판과 우려가 무조건 틀렸다거나 적절치 않다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이른바 ‘정상인’들은 극히 일부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낙인을 찍으며 전체화시킨다. ⓒ시네마 서비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을 꼽는다면, ‘장애인을 왜 이런 식으로 그린거야’ 라는 단순 방관자로서 불평을 드러내는 영화 읽기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장애 운동’을 한다는 이들이라면, 적극적 참여의 태도를 취하여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장애(인) 문제’는 무엇이고, 이와 관련하여 어떤 점들을 보완한다면 좀 더 현실적일 수 있는가를 조언하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후에라도 정신장애인을 (비중이 크든, 적든 간에) 등장인물로 삼는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면, 그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영화를 ‘읽는가?’ ⓒ시네마 서비스

실제 이 영화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볼 때, 나름 유의미한 대목이 없진 않다. 가령, ‘요즘은 장애인 혜택이 많지 않나요?’ 라는 혜란‘들’의 물음 앞에, 인구는 “차량이 LPG 라서 기름값이 반값, 고속도로 지나갈 때 반값, 굴은 공짜, 자동차세 공짜”라고 자조적 표정을 띠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대사는 인섭과 함께 살고 있는 인구의 현실적 처지와 대조되면서, ‘장애인은 혜택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가족/장애인도 살만하다’는 상당수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환기한다. 또한, ‘인섭’은 나이 50살이 다 되었으나 변변한 직업이나 제대로 된 사회재활도 하지 못한 채, 그에 대한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몫으로만 그려진다.

우리 사회의 재가 지적/정신장애인 중 상당수가 직업이 없거나 생활할 곳이 마뜩치 않아, 오로지 개인/가족 차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시네마 서비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장애인을 가족의 짐으로 그려두었다’는 장애인계의 비판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지극히 현실적인 대목이 아닌가? 이 영화에서 감독은 장애인 스스로 독립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재가 지적/정신장애인 중 상당수가 직업이 없거나 생활할 곳이 마뜩치 않아, 오로지 개인/가족 차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몫이 있음에도, 오롯이 개인/가족이 책임지고 있는 형편이고, 이것은 이 영화에서 충분히 그려지고 있다. 다만, 국가/사회가 책임져야 할 몫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있진 않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임을 고려한다면, 이런 대목을 충분히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영화의 초점과는 맞지 않다.

영화가 반영해야 하는 현실은 어디까지인가? ⓒ시네마 서비스

물론 관객이 감독의 기획 의도에 따라서 영화를 해석하거나 비평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계의 비판이 영화 비평의 성격이라는 전제를 고려할 때, 이러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에 대한 꼼꼼하고 진지한 이해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빠지거나 소홀하게 다룬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영화 비판/비평은 관객의 자의적 이해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일부 장애계의 비판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영화 이해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것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한다.

영화 비평은 영화에 대한 꼼꼼하고 진지한 이해 작업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시네마 서비스

지금까지 <사랑할 때...> 영화 내용에 대한 일부 장애계의 비판이 무엇이고 이에 대한 이해/반박 형태로 영화 읽기 태도 및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현실 속 장애(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초점으로 살펴보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구는 인섭과 함께 산에 올라 고함을 지른다. 그러나 함성을 외친다고 해서 현재의 고단한 삶이 바뀌진 않는다. 두 사람의 현실은 산에서 내려가는 순간, 어쩌면 내려가는 과정에서부터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본 이 영화의 미덕은 이 대목이다. 비루하게 반복되는 우리(장애인)의 현실/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둔 것. 때문인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든 생각은, 장애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남루한 현실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어야 할까? 자족적이거나 자기 위안적 차원이 아니라, 장애 문제에 관심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었다. 물론 이는 앞으로 장애 운동을 하는 한, 언제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숙제이지만.

정상에서 그들은 웃고 있지만 산에서 내려가는 순간, 어쩌면 내려가는 과정에서부터 고단한 현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영화와 현실은 그렇게 부닥친다 ⓒ시네마 서비스

*제2기 장애인영화 칼럼니스트교실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새롭고 참신한 시선을 에이블뉴스 독자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필자들의 양해 하에 싣습니다. 이 글은 쓰신 박용민씨는 부산장애인부모회 정책팀장으로 제2기 장애인영화 칼럼니스트교실 수강생입니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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