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6인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여섯 번의 수술을 했다. 아내는 그의 병수발도 들어야 했고 큰 딸과 작은 아들도 돌보아야 했다. 아내는 주로 아이들 병실을 왔다 갔다 했고 그의 병실은 어머니가 지켰다. 어머니는 이미 두 아들을 잃은 터라 또 아들을 잃을까 안절부절 노심초사했다. 그는 두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등산도 하고. ⓒ이복남

“이래 가지고 어찌 살꼬?” 앞이 캄캄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어머니와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아내도 울기만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사골을 고았고, 아내도 정신을 차리고 그와 아이들을 돌보았다. 어머니와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돌 본 탓인지 한 달쯤 지나자 조금씩 나아졌다.

그가 입원한 6인실에서 한 사람이 퇴원을 하자 다른 병실에 있던 아들이 옮겨 왔고 또 한사람이 퇴원하자 이번에는 딸이 옮겨 왔다. 병실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인데 딸이 아직 어리니까 병원에서도 남녀합방을 묵인 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회복이 되자 어머니도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남편과 두 아이를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시킨 채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융기 씨를 인터뷰 하면서 아내의 심정을 듣고 싶다 했더니 아내는 그 때의 기억을 떠 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 병실에서 아이들과 같이 지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100일 쯤 되자 두 아이는 퇴원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동안 병원비는 보험에서 충당을 하고 생활비는 작은 형을 비롯하여 친인척들이 조금씩 보태주었는데 아이들은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진단 일수가 다 된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은 12주 쯤 진단을 받은 모양이고 일수가 되어 퇴원을 하게 된 것이다.

휠체어마라톤에서 홍보대사 이훈과 함께. ⓒ이복남

“아이들이 퇴원하고 터빈 병실에 혼자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걸을 수도 없어서 그의 퇴원은 기약이 없었지만 혼자 있을 수가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다.

“아이들은 금방 회복이 되는 지 처음에는 다리를 좀 절더니 이제는 별로 표도 안 납디다.”

그는 아이들보다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아이들은 나아서 학교에 갔으나 그는 방안에서만 죽치고 있어야 했다. 놀러가는 길이었기에 산재는 안 된다 해도 국민연금은 해당되지 않았을까.

“그동안 회사를 여기저기 옮기는 바람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못 넣었습니다. 그런데 다치고 나니까 국민연금을 받아가라는 연락이 와서 어렵던 차에 잘 받아썼습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사용했으나 몇 달이 지나자 목발에 의지해서 조금씩 걸을 수가 있었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1년 쯤 지났을 때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운전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트럭에는 올라타기도 어려웠다. 운전을 포기하고 다치기 전에 일했던 카센터를 찾아 갔으나 그 몸으로는 어렵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아는 친구에게 사정을 해서 일을 좀 달라고 했다.

“다리는 절뚝거리고 힘이 없어서 무거운 것은 들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다쳤기에 특별히 친구들에게서 놀림은 없었지만 스스로가 위축되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두 손은 성했지만 무거운 것은 들 수가 없었고 앉고 일어서기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판금도색에는 전문기술자였기만 잔심부름이나 하는 처지여서 옆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더구나 다치기 전에는 유도도 하고 범죄예방 등 시민단체 활동으로 캠페인도 했었지만, 차마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4~5년을 그렇게 견디는 사이에 다리는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요즘도 다리를 절기는 하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변했단다. 자동차의 외형은 대체로 문짝, 범퍼, 본네트, 지붕(루프), 트렁크, 휀다(바퀴 덮개 ) 등으로 나뉘는데 판금이란 찌그러진 것을 잘라내고 붙이고 해서 원상태로 복구하는 작업이다. 다만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면 교체를 한단다.

교통사고 차량을 점검하는 이융기 씨. ⓒ이복남

“판금도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표가 안 나게 감쪽같이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무지개 정도의 7가지 색깔이었는데 요즘은 자동차 색깔이 수십 가지다. 그레이만 해도 메탈그레이, 스모크그레이 등 여러 가지로 분류가 된단다.

차종에 따라서 색깔이 정해져 있어서 고장차가 들어오면 그 차종에 맞는 색깔번호를 주문해서, 스프레이로 뿌리고 건조시킨 다음 열처리를 하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기술자 아니겠습니까?”

표 나지 않게 스프레이를 골고루 잘 뿌리는 게 기술이란다. 그런데 사고로 정비공장에 자동차를 맡길 경우 대물의 경우에는 수리할 동안 렌트카를 이용할 수가 있지만 자차의 경우에는 렌트카 이용은 할 수 없단다.

“그럴 경우 필요하면 우리(정비공장) 차를 빌려 주기도 합니다.”

어릴 때 꿈꾸었던 마징가Z 같은 것은 애저녁에 물 건너갔고, 현재 아내와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제각기 앞일을 모색하는 터라 힘이 닿는 데까지 판금도색을 하면서 가족들과 별 탈 없이 단란했으면 더 바랄 게 없단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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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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