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힘이다. 왜냐하면 정보가 있어야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이나 영화를 고르는 일상적인 선택부터 진학이나 취업, 이사, 계약 등 중요한 선택까지 모든 순간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또한 친구, 직장동료, 이웃 등 다양한 집단이나 세대에서 생성·소멸되는 네트워크도 선호하는 정보에 기반한 소통체계다. 이미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핵심도 결국은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고 소통할 것인가다.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없으면 사회에서 소외된다. 그래서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짜짱면과 탕수육,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정보는 자기결정의 기반이다. 예를 들어, 짜장면과 탕수육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상황을 경험해 봤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둘 중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려면, 먹어본 경험이 있거나 맛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짜장면과 탕수육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타인의 결정에 의존하게 된다. 정보가 없으면 결정할 수 권리를 뺏기게 된다. 그래서 정보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알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정보는 고등교육을 받은 비장애인 성인 중심으로 생성되고 소통된다. 그래서 노인, 저학력자, 정신적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은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그 중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이는 발달장애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고, 발달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

지난 12월 14일, 알다센터가 주최한 ‘읽기 쉬운 자료,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 보장의 디딤돌’ 행사

모두를 위한 알 권리, 가장 열악한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시작하자!

다행인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장애계에서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 확보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에서 발표한 ‘깐깐하고 자존심 있는 9·23 발달장애인 권리선언문’(2012), 「누구나 알기 쉽고 모두 함께 누리는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2013)의 제작이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 확보를 위한 장애계의 관심을 촉발하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의 「반갑다, 발달장애인법」(2015), 한국지적장애인협회의 「읽기 쉬운 문서 안내서」(2015), 피치마켓의 「오 헨리 이야기」(2016),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노동법」(2017), 소소한소통의 「누워서 편하게 보는 복지용어」(2018)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또한 2014년 제정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에서 명시한 ‘국가와 지자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는 조항도 이러한 장애계의 활동을 촉진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영국의 'Making it Clear'와 서울시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 직원들이 진행한 읽기 쉬운 자료 개발 워크숍

법을 통한 의무화, 모두를 위한 알 권리 보장의 핵심

그렇다면, 선진국에서는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서울시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이하 알다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인 알 권리 확보를 위한 정책과 구체적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9월 스웨덴과 영국의 관련 기관을 방문했다.

스웨덴은 이미 1976년에 ‘모두를 위한 문화’에 읽기 쉬운 요약본을 삽입하며 정보 접근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2010년에는 문화부 소속으로 ‘MTM(접근 가능한 매체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은 정부기관인 MTM을 주도로 장애인 권리옹호 단체, 출판사, 신문사 등이 읽기 쉬운 자료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 특히 MTM에서는 1984년부터 읽기 쉬운 주간지 ‘8Sider‘를 제작해 유료로 배포하고 있는데, 주 독자층이 발달장애인 외에도 이민자, 노인 등 다양하다고 하다.

영국은 1995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2009년 보건부에서 지적장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 ’Valuing People’을 수립하여 모든 정부 부처가 지적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명시했고, 2010년 ‘평등법’을 통해 법제화했다. 2016년에는 ‘접근 가능 정보 규범’법을 제정, 의료 및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 기관의 읽기 쉬운 자료 제공을 의무화했다.

스웨덴과 영국에서 발행한 읽기 쉬운 책들

서울시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 시민의 알 권리 지원방안 기틀 마련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은 2018년 7월 ‘서울시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는 서울시와 지자체가, 발달장애인법을 근거로, 발달장애인과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의 정보 접근 및 이용을 권리로 인식하고 공식적인 지원을 시작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지난 12월 14일, 알다센터가 주최한 ‘읽기 쉬운 자료,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 보장의 디딤돌’ 행사는 장애계의 관심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70여석의 자리는 행사 시작 전에 이미 다 찼고, 참가자들은 벽에 기대어 서거나 바닥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장애를 만드는 물리적인 장벽 해소를 넘어, 이제 장애계는 정보의 공유를 통한 발달장애인의 권리 확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영국, 스웨덴의 발달장애인이 읽기 쉬운 자료 개발 관련 정책 및 구체적 지원 방안이 소개됐다. 그리고 발달장애인 지원자를 위한 ‘읽기 쉬운 자료 제작 가이드라인 및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 개발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 연구를 진행한 손지영 교수(대전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를 필두로 한 연구팀은 이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만든 ‘읽기 쉬운 서울시발달장애인 지원 계획’과 ‘읽기 쉬운 서울시 서비스’를 소개했다.

이는 중앙 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장애 관련 정책도 발달장애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자료를 지원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이 날 현장에서는 “지자체의 정책을 읽기 쉬운 자료로 계속 제작해 모범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 “더 많은 쉬운 자료가 나올 수 있도록 현장의 실무자나 공무원들을 위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강제조항으로 법을 개정했으면 좋겠다.”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나왔다.

서울시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가 발행한 읽기 쉬운 책들

발달장애인에게 쉬우면 모두에게 쉽다

신체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는 장애인의 인권보장의 기반이다. 그렇다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들 중에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쉬운 자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쉬운 자료란 그림, 쉬운 글, 사진, 녹음파일, 영상 등 발달장애인의 욕구와 선호도에 따라 매우 다양할 것이다.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어떤 읽기 쉬운 자료이든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읽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읽는 사람의 관점으로, 읽는 사람이 쉽게 접근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역지사지에 기반한 공감, 다양한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에 대한 이해, 풍부한 어휘력, 호기심과 열정도 관건이다.

전언했듯이 정보는 내 의지대로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때문에 비장애인 중심으로 소통되는 정보들을 발달장애인도 이해하도록 바꾸는 과정 자체가 권리옹호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자료는 노인, 다문화가족, 저학력자, 정신적 장애인, 외국인은 물론 해당 영역의 전문용어를 잘 모르는 시민 누구에게나 쉽다. 쉬운 자료는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는 초석이 된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다.

*이 글은 서울시읽기쉬운자료개발센터 최희정 팀장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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