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장애인단체활동가들이 보건복지가족부의 장애체험 행사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며 전재희 정관에게 장애등급 재판정 지침 철회를 요구했다. ⓒ에이블뉴스

‘장애등급 재심사’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머물러 있던 장애등급 재심사 규정을 모법인 장애인복지법에 명문화하는 개정안이 장애인당사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 반대 토론에 나섰지만 무위에 그쳤다.

이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은수 의원이 지난해 11월 19일 대표 발의한 것으로, 시·군·구가 등록장애인에 대한 장애등급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정도에 대한 정밀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애등급 재심사에 관한 규정은 그 동안 장애인복지법의 하위법령인 시행규칙에는 명시돼 있었으나, 장애인복지법에는 담겨져 있지 않았다. 박은수 의원측은 이에 대해 “전문성 있는 기관이 적정한 재심사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법률에서 그 기관의 설치근거 및 자격요건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인권침해·이중규제” VS “부당 수급 예방책”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활동보조서비스 신규 신청자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서비스를 2년 이상 이용한 사람도 장애등급을 재판정 받도록 관련 지침을 한층 강화했다. 또한 장애인연금법 제9조 2항은 복지부 또는 시·군·구가 장애인연금 신청자의 장애 상태와 장애등급을 확인하기 위해 장애등급을 재심사할 수 있도록 정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대해 장애인계는 정부가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인연금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자 장애등급 재심사를 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인연금 대상자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보다 강화된 장애판정심사규정이 도입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렇듯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및 장애인연금을 둘러싼 현재 상황과 맞물리면서 이번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찬성 144명, 반대 22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되기까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곽정숙 의원 “가짜 장애인 취급해 모욕감 주는 것”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기 직전 반대 토론에 나서 “이 개정안은 이중의 심사규정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적 소지를 갖고 있다”고 부결 처리해 달라고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호소했다.

“만약 등급 판정이 석연치 않다면 초기 등록 절차에서 객관적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이미 복지부가 제시한 절차대로 등록을 마친 사람을 가짜 장애인으로 취급하여 모욕감을 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 곽 의원의 주장이다.

또한 곽 의원은 “이는 중증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줄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이와 같은 재판정 절차를 통해 중증에서 경증으로 하향 조정된 장애인들이 많고, 이처럼 등급이 하향 조정된 장애인들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게 된다”며 “2009년 장애재판정 심사를 통해서 중증 장애인에서 경증장애인이 된 사람이 2만 1,000명으로 전체 신청자 중 31.5%”라고 말했다.

곽 의원은 “혼자서 거동을 전혀 할 수 없는 뇌병변장애인이 2급으로 하향 조정받아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된 사례도 있다”며 “장애 재판정 위탁심사는 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제한하고 엄격하게 운용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인권침해이며 이중규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원희목 의원 “부정수급 예방액 약 293억 성과”

반면 곽 의원에 이어 본회의 단상에 오른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은 “장애 재심사 업무는 장애 판정이 제대로 됐는지를 점검하는 제도”라고 개정안에 대한 찬성 의견을 표명했다.

원 의원은 “지난 3년 동안 진행한 재심사 결과 중증장애인 신청자 7만 9,116명 중에서 2만 4,915명이 중증장애 대상의 장애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전체 31.5%의 부정수급을 찾아내는 성과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연간 부당 수급 예방액은 2009년 12월 말 기준으로 약 293억 원이나 된다”고 장애등급 재심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이미 국민연금공단이 실시하고 있는 중증장애 심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장애 심사 조직의 안전성과 사업의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처음 장애인 등록을 할 때 정확하게 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심사 업무를 통해서 좀 더 엄밀한 심사과정을 거쳐 잘못된 장애인 판정 등의 등록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당사자 “재심사로 등급 낮아지면 길거리 나앉아야…”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결국 가결됐지만, 국회 밖에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활동보조서비스 신청을 했다가 장애등급이 하향조정되는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장애인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으며, 장애인연금이 지급되는 7월부터 이러한 사례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4월 30일 성명을 발표해 “장애등급 심사의 목적은 예산의 절감과 복지축소일 뿐”이라며 “최근 3년간의 장애등급 위탁심사에서 등급이 하락된 사례는 무려 37.5%에 이르고, 상향조정 사례는 0.4%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등급심사로 인한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장애인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 아무런 비판과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된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수당이 없으면 생존에 심각한 위협에 처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지금 복지제도의 확대가 아닌 장애등급심사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동안 받아왔던 활동보조가 끊기게 될까봐 장애수당 신청을 못하고, 장애수당이 깎이게 될까봐 활동보조 신청을 포기하고, 자립생활을 꿈꾸던 장애인이 시설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했다.

장애판정기준 강화된 뇌병변장애인들 반발 거세

실제 장애연금을 받기 위해 오는 7월까지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김아무개(61·뇌병변장애 2급) 씨는 “재심사를 받아 장애등급이 떨어져 장애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고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뇌병변 장애와 간질장애 등 복합장애를 가진 김 씨는 7년 전 몇 개월간 노숙인 생활을 하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장애인 등록을 한 이후 장애수당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일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장애판정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회장 유흥주) 측은 "뇌성마비, 뇌졸중, 뇌손상 등 각각의 장애특성이 있는 뇌병변장애를 보행 및 일상생활 동작에 따른 일관된 바델지수로 판단하는 것은 연령과 재활치료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차이를 간과한 오류"라며 "이는 활동보조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을 축소하고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 통합을 저지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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