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서창석씨.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앞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나 우리말 '보다'는 눈으로만 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본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로 소리를 들어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고 입으로 맛을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마음으로 느껴보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감을 전부 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랫소리 들어보고 꽃향기는 맡아보고, 좋은 음식 먹어보고, 고운 손 만져보고, 못된 사람 손보고, 어려운 일 해보고, 모르는 것 물어보고, 좋은 곳 둘러보고, 넋두리는 들어보고, 새 신은 신어보고, 예쁜 옷 입어보고, 임의 노래 불러보고, 버들가지 꺾어보고, 고갯마루 넘어보고, 높은 산 올라보고, 돈 생기면 세어보고, 기분 좋아 달려보고, 기뻐서 웃어보고, 슬퍼서 울어보고, 놀부 심보라면 못 먹는 감 찔러보고, 뒷집처녀 훔쳐보고, 살기 싫어 죽어보고, 죽어보다니 죽음이 끝이라면 죽어 볼 수야 없겠지만 아무튼 눈으로 보는 것만 빼고는 다 볼 수 있는 사람인데 특히 들어 보는 것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서창석 그는 올해 서른살의 훤칠한 청년이다.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는 아버지(62)와 어머니 이씨(59) 사이에서 1녀 1남의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택시운전을 하시다가 몇 해전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박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공장에도 다니고 남의 집일도 거들어 주는 등 온갖 궂은일을 하시다가 얼마전부터는 간병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두 살 위의 누나와 집을 지켜야 했다. 그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로버트 장난감을 조립하는 등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놀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그의 취미이자 공부이고 놀이였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은 연구원이었다. 움직이는 로버트를 만들고 싶었고 그런쪽으로 연구하는 박사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는 부산남고(南高)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중학교 때의 희망이 구체화되었다. 제어계측과 즉 자동화 시스템으로 관심이 모아졌던 것이다. 그는 제어계측과를 가고 싶었는데 제어계측과가 있는 학교는 서울대 등 몇 군데 되지도 않았지만 점수도 만만치가 않았다.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추다보니 제어계측과와 비슷한 계열로 수산대(현 부경대) 선박공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그가 원하던 학과였기에 공부도 재미가 있었고 앞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기충천이었다.

징병검사가 나왔다. 키 170cm 체중 55kg 약간 마르기는 했지만 별다른 병도 없고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로 1급 현역입영대상자로 판정 받았다. 그리고 대학 1학년 새내기 1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8월말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친구들과 해운대에 놀러 갔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마지막 여름을 만끽하면서 실컷 놀고 밤 늦게 서야 돌아 왔는데 집에 오니 눈이 좀 침침했다. 눈병이 났나싶어 다음날 근처 안과로 갔다. 의사선생은 별 문제 없다면서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안약을 넣고 나니 괜찮아졌다. 그러나 그것이 긴 절망의 서곡이었음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서창석의 삶 (2편)에 계속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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