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확정된 장향숙(여·46·지체장애1급)씨. <에이블뉴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확정된 장향숙(여·46·지체장애1급)씨는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여성으로 그동안 부산장애인연대 창립을 주도하는 등 주로 부산에서 활동해왔다.

특히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지난해 부산여성장애인연대 회장직을 접고 열린우리당 여성장애인 대표로 입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장씨는 1958년 겨울 경북 영주군의 작은 산골에서 5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생후 1년 6개월만에 고열로 인한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그는 걸을 수 없어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그는 방안에서 앞산과 하늘만 바라봐야만 했다. 다행히 기독교 집안인 덕분에 부모님이 “하나님의 말씀은 알아야 한다”며 국·한문 성경책으로 글을 가르쳐 5~6살에 이미 문맹은 면할 수 있었다.

장씨에게 유일한 벗은 책이었다. 16살에 부산으로 이사한 뒤 만 6년 간 밤낮으로 책갈피에 코피가 젖도록 책만 읽어 그동안 읽은 책이 1만권이나 될 정도다.

그런 장씨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도시빈민이 된 22살에야 책더미에서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장씨는 “처음 바라본 세상의 눈부신 도시의 햇살, 그보다 더 이상하게 눈부신 길거리 사람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그 뒤 사람들이 오고가며 살아 움직이는 길거리에 섞여 움직이며 살기로 다짐했다.

장 씨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수녀를 따라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 지역장애인모임을 창립하고 그곳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장애인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난생 처음 집을 떠나 경기도에 소재한 장애인직업재활원 직조과에서 일하며 다양한 유형의 수많은 전국의 여성장애인들을 알게됐고, 그때야 비로소 여성장애인이 이중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직업재활수료 후 수원의 모 복지관 작업장에서 한달에 8만원씩 받으며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장씨는 ‘황금고리’라는 장학회를 조직해 여성장애인 의식교육, 학습지원 등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장애인운동에 나섰다. 1998년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여성장애인연합’기구를 구성, 부산지역 조직을 맡는 등 여성장애인인권운동에 몸바쳐왔다.

또한 여성장애인운동을 장애인쪽에만 머물지 않고 여성폭력방지운동, 호주제 폐지, 모성권보호, 비정규직노동자문제 등 전체 여성운동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왔다. 이에 대해 장씨는 “장애인이라 안 가도 이해한다고 해버릴까 두려워, 더욱 열심히 했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스스로를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전형적인 장애인 대중의 삶을 산 사람”이라고 자신하며 “여성으로서, 장애인으로서, 소외계층으로서 느끼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 지금까지는 당사자들과 사회를 향해 말했다면, 앞으로는 정치의 현장에서 희망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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