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근씨와 2013년 새해 첫 날 어머니가 가져오신 동치미. ⓒ배성근

새로운 희망과 기대 속에 201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강원도 철원군에 살고 있는 배성근 씨(지체장애 1급·44세)는 새해 첫 날 새벽부터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지난 1일 새벽부터 손수 담근 동치미를 가져온 나이든 어머니 때문이었다.

배씨 어머니는 올해로 73세, 다른 가정의 어머니라면 자식들의 효도, 손주의 재롱에 걱정 없이 남은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할 법도 하지만, 배씨의 어머니는 다르다. 움직이지 못해 침대에 누워만 있는 배씨 걱정에 어머니의 주름살은 깊게 페이고 있다. 어머니는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오로지 자식 걱정 뿐이다.

장애를 갖게 된 후 어머니의 동치미는 약

배씨는 지난 2009년 발생한 사고로 인해 경수 4번이 손상되어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에게 요양병원에서의 삶은 지옥 같았다. 딸 뻘로 보이는 간호조무사의 폭언과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심지어 독방에 갇힌 적도 있었다.

약 3년간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2012년)부터 철원 부모님 댁 옆에 조립식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 표 동치미 사랑은 그가 요양병원에 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별다른 움직임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던 그에게 어머니의 동치미는 ‘소화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동치미 국물 속에 발생하는 젖산균 또는 효모가 소화효소를 생성하거나 분비해 소화제 역할을 대신해 온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밤 12시에 체위 변경해주는 거랑 동치미 담가주시는 것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도 연세로 인해 아프신데… 몇 년 째 큰 불효만 하고 있습니다. 6시인가, 새벽에 오셔서 동치미 주고 가시니 마음이 안 좋았죠.”

동치미 국물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고 하자 배씨의 어머니는 새벽바람에 옆 아들의 집을 찾아 손수 담근 동치미를 주고 가신 것.

이제 어머니의 걱정에서 멀어지고 싶다

배씨는 한 달에 30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을 받고 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면 퇴근하는 활동보조인, 부족한 활동보조시간이 한 없이 밉기만 하다. 척수장애의 특성 상 욕창 방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체위를 변경해줘야 하지만 활동보조인이 퇴근 한 뒤는 나이든 부모님과 13살 조카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다.

활동보조인이 오후 7시 전 배씨의 체위를 변경해주고 퇴근한 뒤 자정(12시)가 되면 배씨는 펜을 물어 거치대에 있는 휴대폰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12시는 그가 체위 변경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때문에 나이든 어머니는 12시 이전까지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신다.

“활동보조인이 근무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만 있어요. 간간히 체위 변경해야 되는 시간에만 어머니나 조카가 오죠.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이려고 빵을 거의 먹죠. 모두 타인에게 의지해야 되는 상황이라 부모님이나 조카까지 없으면…”

더욱이 강원도 철원은 서울과 경기도의 큰 지자체보다 장애인복지에 ‘낙후’된 지역이라 그의 고통은 더욱 심하다. 쉽사리 움직일 수 도 없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일요일은 집 근처 교회에 간다. 교회 가는 시간은 그가 유일하게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콧바람 쐴 수 있는 시간이다.

“지역의 특성 상 복지가 부족하다 보니 불편한 게 너무 많더라구요. 그래서 지난해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활동해야 지금 철원의 열악한 여건을 빨리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강원도지체장애인협회 철원군지회가 운영하는 휠체어탑승설비가 갖춰진 특별교통수단 차량이 단 1대라는 사실도 그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더불어 특별교통수단으로 분류 된 장애인콜택시도 원주시에서 5대만 운영하고 있어 이용의 어려움까지 느끼고 있다.

특히 본지가 파악한 결과 올해 강원도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조례 제정 마무리 단계이며 장애인콜택시 20대 도입 계획도 갖고 있다. 실질적인 장애인콜택시 이용은 올 하반기가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 같은 불편함은 그가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미래는 아직도 멀기에 한숨만 깊어진다. 나이든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그가 삶을 포기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새해 첫 날부터 뜨거운 눈물을 흘린 배씨는 올 한 해 새로운 꿈을 찾아 도약하고픈 마음에 조심스레 꿈꿔본다.

활동보조서비스 시간 확대로 평일 야간, 주말 내내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아무 걱정 없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길.

자신이 더 이상 나이든 어머니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길 말이다. 오늘도 배씨는 침대에서 어머니가 담그신 동치미 한 대접을 소화제 대신 들이키고 있다.

[댓글열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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