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문산역. 9년 전, 시공 당시부터 전철 개통에 대비한 편의시설을 갖춰 놓았다. ⓒ정현석

“이렇게 한적한 곳에 왜 이렇게 거대한 역을 지어 놓았을까? 크게 지은 것만큼 이용객이 많은 역도 아닌데….”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경의선의 종착역이었던 문산역을 방문했을 때의 첫 인상이었다. 당시 이 역에서 운행하던 열차라고 해봐야, 1시간에 1대씩 운행하던 서울행뿐이었다. 그마저도 시간에 맞춰 찾아오지 않으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서울에서 승객을 싣고 역에 도착해 다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열차에 앉아 있을 수가 있었기에, 기차보다는 버스가 더 친숙한 교통수단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면 문산역을 이용하던 손님들은 경로 할인을 받아 저렴하게 서울까지 가려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새로 지어진 역사답게 편의 시설은 괜찮은 편이었다. 역 입구에서부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 내부에 들어서면 다시 대합실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대합실로 올라와서도 내부의 편의 시설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줄만 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남녀가 구분된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고, 화장실을 빠져 나와 모통이를 돌면, 턱이 없는 매표소와 바로 연결되어 휠체어를 타고도 편리하게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곳에서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어, 역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나오기까지의 모든 단계에서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물이 당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장애인들의 열차 탑승을 위한 인프라는 잘 되어 있었지만, 당시 서울과 문산을 오가던 기차는, 얼마 전 동대구역 장애인 추락사고가 일어났던 RDC 열차의 모체인 통근열차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탓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어르신들의 전용이 되었고, 문산역은 ‘편의시설은 있으나 열차는 탈 수 없는 곳’으로 남는 듯 보였다.

전철 개통을 내다본 설계, 유니버설 디자인의 모범이 된 문산역

그러나 지난해 7월 1일 경의선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어 통근열차 대신 전동열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휠체어 장애인도 얼마든지 문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문산역 내에서는 휠체어 리프트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래 전에 지어진 문산역을 지금에 와서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그 당시 문산역의 설계 당시부터 현재의 전철 운행을 고려해 편의시설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산역이 만들어진 때는 지난 2000년, 이 시기라면 4년 후 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있던 대전역을 비롯해 거대한 백화점과 함께 다시 태어난 수원역 역시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러나 건축 당시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고려했던 문산역과는 달리, 대전역과 수원역은 밖으로 나가는 입구에 리프트만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 장애인의 이용이 어려워 현재까지도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한 역으로 꼽힌다.

물론 9년 전에 지어진 문산역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화장실 변기는 너무 높아 휠체어 장애인이 앉기에 불편하고, 엘리베이터 역시 지나치게 좁은 측면이 있다. 여기에다 역 입구의 경사로가 좁아 전동휠체어로 가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이미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것들이기에 필요하다면 ‘보수공사’나 ‘개선공사’를 하면 된다. 다시 말해 어설프게 편의시설을 설치하여 새로 만드는 공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산이 없다”라는 말은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할 때, 담당 기관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새로 시설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없다는 것이지, 기존 시설을 보수할 만큼의 돈도 없다는 것은 아닐 터이다. 예산이 없다는 말에 장애인 당사자들이 허탈한 웃음을 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애인들은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투입되어야 할 금액이라면, 건물의 설계 당시부터 투입을 하게 해 달라는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위를 할 필요도, 어느 열차 승무원의 말처럼 “드러누울”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 사진 위쪽 출입문 부분에 두 번째 경사로가 보인다. ⓒ정현석

경사로를 통해 역 내부로 들어오면 이렇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통해 대합실로 올라오면 장애인 화장실이 가까이에 있다. ⓒ정현석

장애인 화장실 내부 모습이다. 남녀를 구분해 설치한 것은 좋으나 변기의 높이가 높아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이러한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9년 전에 설치된 시설임을 감안할 때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줄만 하다. ⓒ정현석

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승강장으로 바로 연결되어 무리 없이 전철을 이용할 수 있다. ⓒ정현석

*이 글은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인 정현석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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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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