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I am Sam'의 이미지

다음은 일본의 정신지체인 가이드헬퍼(2004년 2월 20일자 칼럼 참조) 파견의 사례이다.

정신지체인 남성 B씨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나 외출할 때나 항상 어머니와 함께 다녔다. 언제나 함께 생활해야 하다보니,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아서 모자지간에 다투는 일이 많았고, 때로는 주먹싸움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B씨에게 주 1회씩의 가이드헬퍼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고, 가이드헬퍼의 파견은 B씨와 그 가정에 조금씩 변화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B씨는 주 1회의 가이드헬퍼 파견 시간을 무척 기다리게 되었고, 가이드헬퍼와의 외출 시 에는 너무나 기뻐하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어머니 역시 주 1회 그 시간만큼은 자기만의 시간을 갖게 되어 생활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쇼핑 등을 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모자간의 싸움도 점차 줄어들었고, 폭력으로 발전되는 일도 없어졌다.

B씨가 같은 장소로 외출을 하는 경우에도, 어머니와 나가는 것과 헬퍼와 나가는 것은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어머니와 외출할 때는 어머니가 지시하는 대로 “네”, “네”하며 따랐지만, 헬퍼와의 외출 시에는 자기의 기분과 느낌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영화 'I am Sam'의 이미지

이렇게 정신지체인에게 가이드헬퍼를 코디네이팅할 때는 다음과 같이, 지체장애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치게 된다.

① 초기 상담

정신지체인 가이드헬퍼 파견 초기 상담 시에는 장애인당사자, 부모, 코디네이터, 이렇게 3자가 참석한 가운데 상담이 이뤄진다. 상담 내용으로는 【본인만의 특징, ADL 정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약 복용 여부, 발작 여부, 발작 시의 대응방법, 원하는 헬퍼 유형 등】을 이야기한다.

② 헬퍼 물색

이용자 장애인에게 적합한 헬퍼를 찾는다.

③ 이용자의 헬퍼 면접

지체장애의 경우에는 첫날부터 바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정신지체인인 경우에는 헬퍼와 얼굴을 익히는 작업을 먼저 하게 된다.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이용자와 헬퍼 서로 간에 면접을 함으로써,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면접 후에는 이용자에게 헬퍼의 인상이 어떤지를 물어보고 싫어하거나 불안해하면 다른 헬퍼를 연결하게 된다. 면접을 통해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경우에는, 서비스 첫날에 코디네이터가 헬퍼와 동행한다. ‘이용자의 헬퍼 면접’에 참가한 헬퍼에게는 1회당 500엔을 지급한다.

다음은 ‘이용자의 헬퍼 면접’을 거치지 않아 코디네이팅에 실패한 사례이다.

정신지체인에 대한 가이드헬퍼 파견은 최소한 2주 전에는 의뢰되어야 하는데, 이는 ‘이용자의 헬퍼 면접’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신지체장애인 C씨의 경우에는, C씨의 어머니로부터 이틀 전에 급히 헬퍼 파견 신청이 접수되었다. 이틀이란 시간 안에 ‘이용자의 헬퍼 면접’ 시간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서, 면접 없이 바로 파견하는 것은 어떤지 의사를 묻게 되었고, C씨의 어머니가 좋다고 하여 그렇게 파견하게 되었다.

이틀 후, 가이드헬퍼가 파견되어 C씨와 같이 외출하게 되었는데, 처음 보는 헬퍼가 낯이 설어서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결국 C씨는 소화가 안 되어 속이 거북해지게 되었고, 중도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부모의 의뢰에 따라 부모와 코디네이터가 합의하여 파견했지만, 장애인당사자의 의견이 배제될 경우에는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 이후로는 정신지체인의 경우에는 반드시 ‘이용자의 헬퍼 면접’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 일본에서 말하는 ‘지적(知的)장애인’을 본 고에서는 ‘정신지체인’으로 표현하였기에 여기에는 발달장애인도 포함됨.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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