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성범죄 교사)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인턴기자의 기사 한 줄이 억울하게 당하기만 했던 힘없는 청각장애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단초가 됐다. 일명 도가니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동시에 언제까지나 숨길 수 있으리라는 가해자들의 허황된 꿈을 산산조각 냈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분노는 처벌로 치유됐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범죄의 주요 무대는 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나 그들에게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시설들이었다.

대표적인 게 약 4년 전 제기된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산하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성추행과 강제노동 등 장애인 인권 침해가 지속적으로 이뤄진 사건이다. 거주인 간의 성폭력 문제가 있었는데 그 문제를 인지하고도 시설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고, 같은 방을 쓰게 하면서 떨어져서 자라고 했다고 한다.

직접 들은 전설적인 사건들도 있다. 중학생이었던 남자 후배가 시설에서 일하는 여자 선생님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주 거짓말을 해왔던 터라 신뢰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진술은 꽤 구체적이었다. 해당 여선생이 자신의 바지를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일련의 상황을 생생히 묘사했다. 문제는 타인들도 그 말을 믿지 않았음에 있었다. 이렇게 진실인지 소설인지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내려지지 못하고 사건은 묻혔다.

중도에 장애를 얻은 형들은 건장했다. 어릴 적부터 모범생의 궤적에서 이탈한 삶을 살았단다. 사고 후 몸이 불편해져 특수학교에 진학하고도 담배는 물론이거니와 술에도 손을 댔다. 충격적인 건 이들 중 일부가 학교나 생활관에서 일하는 젊은 여교사들과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거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 입으로 그러한 일들이 있었음을 떠벌리고 다녔다.

지난 5월 18일 국립재활원에서 연 성 재활 세미나에서 만난 50대 정도의 비장애인 중년 여성은 시설에서의 성 폭력을 고발했다.

자신이 아는 지적장애 남성이 여자 교사에게 당한 성 범죄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여성 장애인뿐 아니라 남성 장애인에 대한 성 범죄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셨다. 자의든 타의든 남성 장애인도 성 범죄의 대상 혹은 주체일 수 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보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남성 장애인이 중심에 있는 성 범죄를 외면하는 건 직무유기다. ‘어차피 성 관계를 갖기 힘듦으로 누군가가 먼저 성행위를 해주면 못 이기는 척 해야 한다’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이건 조롱에 가까웠다. 어쩌면 모든 성 범죄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너도 좋지 않았냐”는 그릇된 생각의 변형일지도 모른다. 성 행위를 욕구해소의 차원으로만 해석하는 이들의 무지다.

대개 소가 없어져야 외양간을 손본다. 결정적 사건이 벌어져야 해결책을 찾으려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속담이 명확하게 진단한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은 늘 임시변통이었다. 법을 고치거나 범죄 피해가 일어난 기관과 비슷한 곳들을 전수 조사하는 식으로 넘어갔다. 그러니 그 좋은 기회들을 다 날리고, 누군가의 희생을 야기한 거다.

태백의 한 특수학교서 발생한 성 범죄와 해당 학교 교장의 자살은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도가니 사건에서 피해자들에게 던져진 작은 공에 주목했어야 했다. 특수교사와 사회복지사들을 양산하는 곳에서 장애인의 성을 존중하는 것에 대한 교육을 제공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직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는 과거 이와 관련된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한 자격 없는 사람이 특수교사가 되게 하면 안 됐다.

결국 이 사태를 만든 건 대수롭지 않게 과거 사건들을 대했던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었다. 이번만큼은 달라야한다. 한 특수학교 교사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외면하면 안 된다. 장애인의 성(性)에 대한 교육이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에게 절실하다.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희생자가 또 나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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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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