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카데미 시상식 관련 소식들을 접하다 보니, 작년 이맘때쯤 열렸던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떠오른다.

영화제의 꽃,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이 누구였는지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에디 레드메인과 <스틸 앨리스>의 줄리안 무어가 그 영예의 주인공이었었다.

두 배우의 수상 소감을 떠올려 보았다. 에디 레드메인은 “이 상은 루게릭 병과 싸우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 줄리안 무어는 “이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고 말했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의 전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고, <스틸 앨리스>는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두 배우 모두 장애를 겪고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뤄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스틸 앨리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스틸 앨리스(2014)>는 세 명의 자녀를 둔 엄마이자 능력 있는 대학 교수로서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살던 여성이 희귀성 알츠하이머, 즉 조발성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뒤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다른 알츠하이머 소재의 영화들이 환자와 환자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주로 집중했다면, <스틸 앨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 당사자의 관점을 유지하는 방식을 취했다.

영화를 조금 넓게 보면, 왜 감독이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 속에는 장애를 가진 인물은 앨리스 한 명뿐이지만, 작품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앨리스들이 있다.

우선 루게릭병 투병 중에 영화를 만들어낸 故 리처드 글랫저 감독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스틸 앨리스>를 유작으로 세상을 마감하게 된다. 아마 그의 삶과 심리는 영화 속 앨리스에 투영되었던 것이었으리라.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원작 소설 <스틸 앨리스>가 있었다. 동명의 소설 <스틸 앨리스>는 한 신경학 박사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든 살의 할머니의 마음속과 머릿속을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나면, 영화의 주제 의식과 기승전결을 떠나서 진심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불안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영화는 오히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했다. 만약 앨리스가 기억을 잃어 가는 과정,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주였으면, 굉장히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주체적인 앨리스의 캐릭터답게 끝까지 강인했던 그녀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들을 기록해 놓은 일기장처럼 보인다.

모든 기억이 잃어감에도 꾸준히 등장하는 단편적인 장면들이 있다. 앨리스의 죽은 엄마와 언니와 함께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다.

사실 그 기억들은 굳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잊힐 기억이다. 만약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예전의 앨리스였다면, 그때의 기억은 지금보다 더 흐릿하게 남았을 것이다.

알츠하이머 검사 당시 부모에 관해 이야기 하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와 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이었다고 단편적으로 대답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기억은 어릴 적 뉴햄프셔에서 함께한 가족들과의 추억이었다. 그 기억 속에는 함께 걷던 바다의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가족의 표정까지 담겨있었다.

앨리스의 움직임의 속도를 따라가듯 점점 느려지는 영화의 호흡은 앨리스뿐 아니라, 감독, 원작자가 기록한 그들, 줄리안 무어가 이 배역을 맡으며 맡았던 알츠하이머 환자들과 그 호흡을 함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기억들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더욱더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본 앨리스. 예전처럼 여전히 멋지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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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 대학에서 미디어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하였고, 방송과 영화 관련 칼럼을 주로 써왔다. 칼럼을 통해서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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