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두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임효진씨의 ‘4개의 귀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4개의 귀로 살아가는 세상

임효진

우리 집에서 둘째인 나는 내가 받은 사랑만큼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족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렇게 철없던 중학생의 나는 끈질기게 부모님을 쫓아다니며 강아지를 입양하거나 동생을 입양해서 가족이 되어주자고 선택을 강요했다. 당연히 부모님은 늦둥이를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고 강아지도 물론 반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동생 앓이를 잊혀갈 때쯤, 엄마는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작은 상자에 담겨있던 두 줄로 나타난 동생의 첫 등장이었다. 마치 내가 아기를 품은 엄마처럼 엄마와 함께 열 달을 마음속으로 품었고 동생은 선물처럼 우리집에 무사히 와주었다.

하늘은 천사의 앞날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그날은 눈물도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고 죽기 전 마지막까지도 뜨겁게 뛴다는 심장마저 멈출 것 같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조심성 없는 내가 문을 쾅 닫아도 동생은 쌔근쌔근 잠을 잤고, 소리 나는 거북이 장난감에 관심을 갖기보다 하얀 눈과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에 관심이 많았다. 동생이 순하다고, 삼신할미가 집을 잘못 찾아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지 않고 잘 웃는다고 엄마, 아빠에게 내 아이를 자랑하듯 말했다.

엄마는 동생을 안고 있는 나와 동생을 번갈아 보며 울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아빠는 천사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하늘은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단 천사를 우리 집에 보내준 대신 천사의 두 귀를 막아버렸다. 그렇게 동생은 선천성 청각장애를 진단받았다. 어쩌면 두 귀를 막은 건 하늘이 아닌 ‘우리 가족’이었을지 모른다. 동생을 품고 있을 때 엄마에게 화내지 말 걸. 좋은 말만 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나쁜 말을 해서 아이가 귀를 닫은 건 아닐까. 엄마는 말했다. 내 잘못이 아닌 엄마의 잘못이라고. 너무 늦게 늦둥이를 꿈꿨고,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랐어야 했는데 아이의 미래마저 일찍 그렸기에 세상은 어찌 될지 모르는 알 수 없는 곳임을 알려준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렇게 동생은 선물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의 죄책감이 되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동생은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세상을 들을 수 있는 두 귀를 선물 받았다. 아직도 그날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엄마 품에 안겨 수술실에 들어간 날. 깎은 머리가 길어진 게 어색했는지 거울에 비친 머리카락을 만지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 선물 받은 두 귀로 소리를 듣던 날. 동생은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엄마 뱃속에서 놓고 온 것을 찾아 기뻤는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우는 모습마저 우리 가족에겐 사랑스러운 아픔이었다. 부디 세상에 잘 적응해 주기를. 부디 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동생은 세상의 소리에 적응할 때마다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처음 보청기를 착용한 순간부터 익숙해질 때까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기계음에 무서움을 느꼈고,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 때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과 눈빛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동생을 위해 해 줄 수 있던 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통증을 견뎌주는 것이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보청기를 잃어버리고 온 날, 가족 모두가 밤늦도록 세찬 비를 맞아가며 동생의 작고 까만 귀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날 엄마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을 흘리며 "세상에 귀를 버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어. 너는 오늘 스스로 귀를 버린 거야. 아무 소리도 듣지 마."라며 생채기를 냈다. 그 해의 성장통은 길었던 장마만큼 엄마에게, 동생에게, 우리 모두에게 유독 길게 남아있다.

어느덧 동생이 소리를 듣게 된 지 13년이 흘렀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현재 동생은 나보다 큰 키를 가졌고, 세상의 벽을 허물 정도로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에서는 보청기를 사용할 수 없어 학교 생존수영 수업에서 열외가 된 날 누구보다 강해 보였던 동생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줄넘기를 할 때 보청기가 떨어지면 다시 붙이고 줄을 넘었고, 달리기를 할 때 보청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테이프를 붙이고 끝까지 달리는 동생이기에 수영을 배우기 어렵단 편견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조차 동생에게 말해주었다. 세상엔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그냥 좋아하고 잘하는 걸 더 즐길 수 있다고. 하지만 13살의 동생은 우리보다 강했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벽을 단단한 마음으로 부숴 버렸다. 소리를 못 듣는 대신 선생님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았고, 보드마카로 써주는 글을 보며 숨을 쉬는 법을 배웠다. 발차기를 하며 속도를 냈다. 팔을 휘저으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물을 가르며 비록 천천히, 느리지만 마지막 벽을 짚어 완주했다. 그렇게 동생은 본인이 얼마만큼 강한 사람인지, 어쩌면 ‘장애’라는 조금의 불편함에 무너지는 건 장애인이 아닌 오히려 ‘세상의 편견’이라는 약한 벽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몸도 마음도 점점 자라고 있는 동생을 보며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내가 생각했던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란 사전적 정의였다. 나와는 다르게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가진 사람이기에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 속에서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한편으론 그들을 통해 현재 비장애인으로서의 내 삶에 감사하기도 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일방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유독 말이 빨라 다시 질문 받는 경우가 많았던 나는 동생을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습관이 생겼고, 덕분에 차분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을 정도이다. 동생은 상대방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 상대방의 입모양과 몸짓을 더 자세히 보고, 청각장애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타인의 말에 집중해서 더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 이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와 그들의 마음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

동생이 우리 집에 선물처럼 찾아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던 날, 처음 청각장애를 진단받고 가족 모두가 죄책감과 절망감을 느낀 날, 비록 느리지만 또박또박 "엄마, 아빠, 언니, 오빠"라고 말하던 날, "보청기 챙기는 건 귀찮은데 그래도 듣기 싫은 소리는 내가 선택해서 안 들을 수도 있고, 공부할 땐 엄청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어."라며 4개의 귀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지금까지. 매 순간 동생은 자신의 장애를 스스로 극복해왔고, 누구보다 강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먼 훗날 동생이 자신의 4개의 귀로 자신보다 더 약하고, 세상의 가장 낮은 자의 목소리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내가 동생의 귀가 되어 동생의 소리를 들어주어야지. 글의 마무리로, 동생이 보청기를 끼고서 그동안 부끄러워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를 동생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너의 마음의 소리까지 들어주고 싶은 언니가 너를 항상 응원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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