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앞을 보지 못하는 건 괜찮았어요. 힘들었던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수천 번 되새기고 가슴속으로 '지지 않겠다'고 외쳤어요."

선천성 시각장애인 김현아(25.여.울산시 남구)씨는 2년간의 독학으로 미국 로스쿨 입학 자격시험(LSAT)을 거쳐 지난해 12월1일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에 당당히 합격했다.

국내 시각장애인이 미국 로스쿨에 입학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15일 김씨는 "가족이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미국 로스쿨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멀고도 고단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철이었어요. 서울에서 하루 두 곳의 학원에 다녔는데 왼손에는 우산과 점자책 3권을 넣은 쇼핑백, 오른손에는 내 눈이 돼 주는 지팡이, 어깨에는 일반 노트북보다 무거운 점자정보 단말기(글을 점자로 읽는 단말기로 시각장애인용 노트북)가 든 가방을 멨어요. 학원 한 곳은 버스를 환승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죠."

정작 공부보다는 학원에 가는 길이 매일 전쟁이었다는 것.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로 된 전문 교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일반인보다 공부하는데 3배 이상의 시간이 들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전문교재가 부족해 엄마가 점자로 바꿔 줬다"며 "책이 더 많이 필요해지면서 점자도서관이나 시각장애인용 점자도서를 제작해 주는 서울 강남의 하상복지관을 이용했다"고 소개했다.

법학과 관련한 전문 도서나 영어 도서가 없어서 점역비(점자번역비)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글파일의 글자 10호 크기로 A4용지 40장 정도의 문서가 점자로는 100쪽짜리 책 1권이 된다"며 "법학 전문도서 1권은 점자책으로 10권이 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와 책 말고도 김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또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체계다.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맹학교에는 인문계 과정이 없다. 안마와 침술을 위주로 가르치는 이른바 '실업계'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대학에 가려면 일반 학원에서 별도로 공부해야 한다.

김씨는 "지금은 서울의 맹학교 한 곳에 인문계 과정이 생겼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며 "공부하려는 장애인에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김씨는 어려운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자신감으로 모두 이겨냈다.

그는 "모든 어려움은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한다"는 그는 "적극적인 자세로 목표를 세우고 자기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공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씨의 장래 희망은 국제인권변호사와 법학 교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모의재판의 역할극에서 변호사역을 맡으면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는 김씨는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 법적 지식을 갖춰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아빠와 엄마는 한결같이 나에게 자신감을 주며 공부할 수 있도록 10여년 동안 책(점자)을 만들어 준 든든한 후원자였고 하나뿐인 남동생도 오빠처럼 나를 배려하고 용기를 줬다"며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운 가족에게 보답하는 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lee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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