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활동하는 지체장애를 가진 KBS 노준철 기자. 왼손으로 리포팅을 하고 있는 모습. ⓒKBS

[창간 7주년 특집] KBS 노준철 기자

지난 2004년, KBS 신입사원 공채 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KBS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이 KBS 공채시험을 통해 기자직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KBS 부산 취재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노준철(29)씨.

그는 오른팔의 신경마비증세로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장애로 인해 혹시 취재할 때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주변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올해 6년차 기자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서 노 기자를 만났다.

‘이달의 기자상’ 두 번이나 수상한 실력파 기자

노 기자가 기자직에 합격했을 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장애인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때였다. 그런 사회 속에서 '최초 장애인 기자'의 탄생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핫이슈'였다. 당시 언론들은 연신 노 기자의 합격을 ‘최초 장애인 기자의 탄생’이라고 보도했다.

"뉴스를 취재해서 생생하게 보도하는 '뉴스전달자'가 되고 싶어 지원을 했는데 합격하고 나니 장애인이란 이유로 '뉴스메이커'가 되었습니다. 그런 관심들이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노 기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기자’의 꿈을 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불의의 사고로 오른팔에 신경이 마비되는 장애를 입게 됐다. 이후 비장애인 중심인 '기자'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매일같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 따위가 그의 뜨거운 열정을 잠재울 순 없었다.

대학교 학보사 생활을 하던 1999년, 그는 거창 양민학살사건과 마산 진전면 양민학살 사건 등의 취재를 통해 대학신문가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학회나 경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열정과 실력으로 KBS 공채에 합격한 후 그는 '화학공장 근로자의 유기주석 중독'에 관한 추적 보도, '교육청 엉터리 첨단방송장비 사업'에 대한 고발 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장애인 기자라는 소명 때문에 더 열심히 했죠. 제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앞으로 취업을 앞둔 다른 장애인들은 취업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만 같았거든요."

노 기자는 자신이 가는 길이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그리고 결국 그는 비장애인이 중심인 기자사회에서 열정과 실력으로서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증명해 냈다.

위기 상황도 기지 발휘해 슬기롭게 넘겨

노준철 기자는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일본인 관광객 등 16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부산 사격장 화재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저는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해 취재수첩에 괴발개발 가로로 정보를 적습니다. 근데 그날은 추운 날씨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손이 얼어버린 거죠."

갑자기 몰아친 한파로 노 기자는 오른팔의 신경마비 증세가 심해져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재 참사가 빚어진 사격장 내부 그림을 그려달라는 보도국의 '컴퓨터그래픽' 요청으로 더욱 난감하게 됐다.

당시 노 기자는 시시각각 언론사들의 속보경쟁 속에 KBS 대표로 취재현장을 책임지고 있었던 상황. 노 기자는 순발력을 발휘해 취재수첩 대신 휴대전화의 녹음 기능을 이용해 현장의 정보 하나하나를 직접 녹음했다.

또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격장 내부 평면도'를 찍어 컴퓨터 그래픽용 밑그림을 만들어 보도국에 전송했다. 이렇게 부산사격장 화재사건은 아무 탈 없이 뉴스로 전파됐다.

오른팔이 불편해도 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오른손으로 1kg 정도의 무게를 감당해낼 수 있어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있는 노준철 기자. ⓒKBS

노 기자는 오른팔이 불편하지만 마이크의 무게는 감당해낼 수 있다. 오른손으로 1kg 정도의 무게의 물건을 들 수 있기 때문에 화면 구성에 따라 꼭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쥐어야하는 경우에는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쥔다.

기사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오른손 위주로 만들어진 마우스보다 키보드 단축키를 사용하거나 '독수리 타법'을 활용한다. “독수리 타법은 1인자”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그래도 검지손가락이 가끔 시퍼렇게 멍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오른손이 자유롭지 않아 다른 취재도구를 찾고 남들보다 한 발짝 먼저 발로 뛰어가는 노 기자는 "저는 이렇게 믿어요. 기사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발로 뛰어 쓰는 것"이라면서 그가 생각하는 기자상을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기자’라는 주변의 시선이 버거울 때도 있다. “대다수 취재원들은 제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모릅니다. 하지만 저와 악수를 한다면 제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금방 알아채죠.”

악수를 하고 난 다음 취재원들은 장애가 있는 노 기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 하기도 한다. 노 기자는 “남들의 시선이 장애인을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라며 “불편함 없이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분야 보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장애인 정책 개선을 위해 노 기자는 지금까지 50여건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장애인분야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만이 장애인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은 사회의 창이다. 장애인 인권 신장을 위해 올바른 장애인 용어 사용과 장애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며 “장애인 분야의 보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언론이나 언론인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노 기자는 이어 “장애인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이해 부족으로 장애인의 어려움과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장애인들이 가진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 취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낮은 눈과 귀를 가진 '지식노동자'의 삶을 사는 게 인생목표"

'장애인'이기에 장애인 당사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고 있다는 그는 "특권의식을 지닌 '엘리트' 기자가 아닌 낮은 눈과 귀를 통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층과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식노동자'로 사는 게 인생의 목표"라며 "어느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저를 더 채찍질하며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장애인이 언론사에 많이 진출해 장애인 목소리를 많이 내준다면 장애인들의 삶이 더 윤택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언론인을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약자를 위한 소통매개체가 되고 싶은 노준철 기자. 몸이 불편해 남들보다 먼저 준비하고 먼저 길을 나서지만 그는 지치지 않는다. 마음속에 뜨거운 열정과 '약자를 위한 기자'라는 소신이 있기에 오늘도 열심히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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