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누워서 인터넷을 하는 스파인2000 운영자 왕태윤씨. ⓒ스파인2000

"최초 스파인2000은 국립재활원 출신 장애인들의 친목모임이었다. 어느 날 술을 마시면서 만날 술만 마시는 우리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의미 있는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자원봉사 활동이다."

포탈사이트 다음에 둥지를 트고 있는 자원봉사모임 스파인2000(cafe.daum.net/spine2000)의 운영자 왕태윤(남·40·지체장애1급)씨가 전하는 스파인2000의 탄생 비화(?)다. 술자리에서 한번쯤 나올 법한 이야기를 실천에 옮긴지 벌써 8년째다. 대충 봉사하고, 자족하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스파인2000에 후원한 사람, 한번이라도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을 인터넷에 모두 기록을 해놓았는데, 이 사람들이 1,500명이 넘어요. 정말 인터넷이 기적을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기적은 첫 활동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2001년 9월 서울역 근처에 있는 장애아동시설 가브리엘의 집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기로 하고, 인터넷에 공지를 띄웠다. 후원금을 모집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 만에 300여만원이 걷혔다.

왕씨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우리같이 행동반경이 좁고, 아는 사람도 없고, 이동권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후원금을 조성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인터넷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퇴원한 후 무조건 구입한 컴퓨터

왕씨는 최중증장애인이다. 중증장애인이라는 말 앞에 굳이 ‘최’라는 말까지 붙이는 이유는 왕씨는 목 이하를 쓸 수 없는 척수 신경을 다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명문대학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니고, 군대에 다녀온 지 2개월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입원 중에 아버지를 여의는 슬픔까지 겪고, 1996년 퇴원했다. 그리고 무작정 컴퓨터를 샀다.

“당시 윈도우95가 처음 나왔는데, 퇴원하자마자 컴퓨터부터 샀다. 손을 쓸 수 없지만, 어깨는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 내게 필요한 옵션에 가면 키보드 숫자판을 마우스 대용으로 설정하는 기능이 있다.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컴퓨터를 사용했다.”

2년 뒤에는 사촌동생과 사업까지 벌였다. 사촌동생이 벤처기업을 시작했는데, 같이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흔쾌히 응했다. 왕씨는 당시 웹 사이트에 글을 올리거나 뿌리고, 서핑을 통해 자료를 찾아내는 일들을 했다.

국립재활원 컴퓨터 강사로 활동

자랑스러운 척수장애인상을 받고 있는 스파인2000 운영자 왕태윤씨.ⓒ스파인2000

왕씨의 컴퓨터 실력이 빛을 보게 된 것은 2000년 국립재활원 컴퓨터 교육을 맡게 되면서부터다.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 컴퓨터를 다루는 방법은 직접 경험해본 당사자가 아니면 가르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됐다.

“손 못 쓰는 장애인이 키보드를 다루는 방법, 자판을 두드리는 방법, 장애인에게 유용한 사이트, 당시 붐을 일으킨 이동권 운동,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서명운동 등이 주요 강의내용이었다.”

왕씨는 건강이 악화돼 중환자실에 실려 가는 2002년 11월까지 약 2년간을 강사 활동을 했다. 강사로 활동하던 중 국립재활원 동료들과 함께 스파인2000을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장애아동시설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전달하고, 독감 예방 접종을 실시하는데 주력했다.

회원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사회복지사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새터민과 외국인노동자의 어려움을 전해 듣고, 그들에게도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학용품과 책을 후원받아 장애인야학들에 전달하는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인터넷 기반으로 모든 활동 전개

강원래씨(가운데)와 이창순씨(오른쪽)는 스파인2000의 골수 회원이다. ⓒ스파인2000

스파인2000의 모든 활동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다. 왕씨가 카페에 글을 올려서 봉사활동을 공지하면,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 봉사활동 참여 여부를 알린다. 봉사활동 이후에는 꼭 결산 결과를 공유하고, 영수증을 스캔해서 올린다. 다양한 사진을 올려 현장 소식을 공유하는 것은 기본이다. 후원계좌로 입금되는 후원금 소식도 하나도 빠짐없이 올린다. 물품 후원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 운영자인 왕씨는 마우스스틱을 입에 물고 글을 썼다. 하지만 회원이 많아지고, 활동 범위가 확장되면서 마우스스틱으로 커버하기가 힘들게 됐다. 지금은 가까운 회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신 글을 올릴 수 있도록 조치하거나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이용해 글을 쓰곤 한다.

스파인2000의 꾸준한 활동에 대한 작은 보답일까? 왕씨는 한국척수장애인협회가 수여하는 2008년 자랑스러운 척수장애인으로 뽑혀 지난 10월 1일 상을 받았고, 그가 운영하는 스파인2000은 지난 11월 23일 MBC 사회봉사대상 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발로 컴퓨터 하는 방법 가르쳐야”

왕씨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해준 컴퓨터와 인터넷 정책과 관련해 할 말이 많다. “야학이나 장애아동시설에서는 컴퓨터를 엄청나게 원한다. 그런데 가보면 1~2대밖에 없다. 공간도 부족하고, 예산도 없다. 컴퓨터는 정말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니 싸게 공급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장애인정보화교육에 대한 제언을 내놓았다. “국가가 직접 장애인들을 찾아다니며 교육을 해야 한다.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지 말고, 게임 같은 것을 가르치면 취직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팔 못 쓰는 사람들이 컴퓨터 사용하는 방법, 발로 컴퓨터 사용하는 방법 등 중증장애인을 위해 특화된 교육이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컴퓨터강의를 진행하면 인기가 좋을 것이다.”

*에이블뉴스가 12월 1일로 창간 6주년을 맞았습니다. 에이블뉴스는 국내 최초 인터넷장애인신문으로서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인터넷 세상을 선보이려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 특집에서는 인터넷과 컴퓨터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만나고 있습니다. 기사제보: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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