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막한 장애인인권영화제(주최 제주DPI) <에이블뉴스>

장애인의 삶과 문화를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한 영화들을 풍성하게 선보인 제6회 장애인인권영화제(주최 제주 DPI)가 지난 27일 폐막, 내년을 기약했다.

영화제는 지난 26일 제주 국립박물관에서 한국 DPI 이익섭 회장을 비롯한 250여명의 장애인 및 비장애인 관객들이 자리한 가운데 개막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상영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이후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그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 장애인 고용 등을 주제로 한 국내외 영화 12편이 상영돼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 중간 중간 현장에서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는 여러 감독들과의 열린 대화의 자리를 마련, 장애인의 삶을 다각도로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여기에 시각, 청각, 지체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모든 상영작에 한글자막을 넣고 화면해설, 영화 관람을 위한 도우미, 수화통역사 배치 등의 서비스가 제공됐다.

새롭게 선보인 작품들 관객 사로잡아

이번 영화제에서 첫 선보인 영화 '뉴 어프로치'의 한 장면 <에이블뉴스>

지난 78년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 됐던 ‘뉴 어프로치(New Approach)’는 장애인 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광고를 만드는 회사 중역들이 젊은 CF감독이 만든 참신한 장애인고용 광고들을 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뮤지컬, 공장에서 일하는 장애인근로자와의 인터뷰, 모든 사물의 높이를 휠체어장애인에 맞추어 만들어진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 간 비장애인이 겪는 일상 등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내 장애인고용에 있어 비장애인의 관점의 전환을 촉구한 좋은 작품이라는 관객들의 평가를 받았다.

고등학교 특수학급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린 영화 ‘준비 그리고 출발’도 특수학급의 환경과 장애인 학생들이 사회의 일꾼으로 나아가고자하는 바람을 진솔하게 담아 관객들의 감동을 샀다. 이 작품은 영화에 등장하는 특수학급 아이들의 담임교사인 김병련 선생님이 직접 감독하고, 내레이션 또한 영화의 주인공인 송요찬 군이 맡아 장애아들의 취업 문제를 한층 현장감 있게 느낄 수 있게 했다.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상영된 일본 오구리 켄 감독의 영화 ‘able'은 비장애인들이 자신들과 함께 살게 된 지적장애인 2명을 위해서 규칙과 올바른 일상의 시스템을 만들어 거기에 따라 생활을 만들어가고, 스터디 그룹에 출석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어드바이스를 듣는 과정을 그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과연 나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를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감독 대화서 다양한 이야기 쏟아져

첫날 열린 류미례 감독과의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시간에는 미디어에 나타난 유형화된 장애인의 모습을 비평하고, 현재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장애코드로 문화읽기’공동체의 경험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과의 대화시간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주제로 이야기하는 류미례 감독 <에이블뉴스>

이 자리에서 류 감독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 대부분은 초월적 현자나 예언자로, 자폐증 환자는 특별한 초능력자로 묘사 된다”며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의 백광호라는 인물처럼 장애인이 스릴러 영화에서는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로 등장 한다”고 지적했다. 또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을 ‘내 편’으로, ‘착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경우도 많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류 감독은 온라인 카페 ‘장애코드로 문화 읽기’ 공동체와 관련 “영화들 속에 나타난 장애인의 모습에 회의를 느껴 당사자 입장에서 문화를 보는 시각을 마련하기 위해 ‘장애코드로 문화읽기’를 만들게 됐다”며 “장애인이 어떤 임무를 띠고 나오지 않는 영화, 비장애인의 필요에 의해 설정되는 장애인 캐릭터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매일 매일을 다양하게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꿈꾼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류 감독은 “얼마 전 우연히 영국에는 ‘영상물에 대한 장애인 참여 가이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며 그 내용에 대해 설명, 장애에 대한 관점이 장애인고용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문제를 던졌다.

“먼저 이 가이드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들보다 어떤 사고나 질병의 결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장애인이 방송과 영화에 포함되는데 있어 문제점은 오히려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지식과 확신의 부족, 스튜디오, 연습실, 사무실을 어떻게 ‘장애인에게 우호적인’ 장소로 바꿀지를 모르는 것 등으로 장애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이 가이드는 장애인을 리포터, 사회자, 배역으로 참여시키기를 의무화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의 환기부터 해야 한다고 써 있다.”

장애인의 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핑크 팰리스’의 서동일 감독과 관객들의 열린 대화에서는 관람한 관객들의 다양한 관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구 DPI 윤삼호 정책부장은 “주인공 장애인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내지 못하고, 불필요한 제작진의 개입이 많지 않았나”라고 지적한 뒤 “카메라 앵글은 곧 감독의 시선인데 시종일관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어 카메라의 위치가 현실에서의 권력관계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은 “총각 딱지를 떼는 것이 소원인 48세의 동수 아저씨가 성매매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또 한번 성매매업소를 찾는 대목에 대해 불편했다”고 말하면서 “성매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해 감독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 감독은 “장애인의 욕구와 비장애인의 욕구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일축한 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다운증후군 딸과 5월 출산예정인 아기가 있어 앞으로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관객과의 대화시간 '장애여성과 매스미디어' 주제로 이야기하는 장애여성문화공동체 김미연 대표 <에이블뉴스>

2001년 시작된 장애인이동권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노들야학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노들바람’의 박종필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야학과 투쟁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야학에 공부를 하려고 왔는데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장애인들의 입장을 교사가 대변한 것뿐”이라며 “교육이 맞느냐 투쟁이 맞느냐는 갈등 사이에서 단절이나 분리보다는 통일을 고민하는 교사들이 올바른 야학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끝으로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끼판에서 제작한 자신의 장애를 당당히 받아들이려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4=5’, ‘난나’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한 자리에 올라 관객들에게 영화를 제작하기까지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영화 촬영 후 달라진 점이 있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4=5’의 주인공 최미경 씨는 “변한 건 없지만 그런데 변했다”고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뒤 “장애를 드러냄이 어색하지만 받아들여가며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며 웃었다.

장애인만의 축제 아닌 모두의 축제로

영화제를 주최한 제주DPI 양영진 사무국장은 “장애인과 인권은 사람들에게 다소 무거운 주제”라면서도 “이 영화제가 장애인들만의 문화적 축제로 인식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갈수록 장애인미디어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장애인 당사자들이 만든 영화 혹은 장애인의 인권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영화들을 발굴하고 상영해 장애인인권문제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함께 풀어가는 일에 앞장서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영화제에 참석한 이진서 비서관(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실)은 “이번 장애인인권영화제 영상이라는 문화매체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동의 장 이었다”며 “현재 나경원 의원은 국회도 장애인 인권문제를 공감할 수 있도록 장애인인권영화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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