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제추진연대 이정인(서울장애인인권부모회 회장) 공동대표가 성년후견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40대 정신지체 2급 여성 김모씨는 10여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1억원을 지급받았으나 같이 살게 된 시누이가 김씨의 동의 없이 모두 사용해 버렸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근거한 생계비와 장애수당도 시누이가 챙겼다. 김씨는 자신에게 생계비와 장애수당이 입금되는 통장이 있는지도 몰랐다.

지난해 8월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최모씨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왔다. 그동안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그녀였다. 어느 날 미국에 이민 갔던 이복동생이 나타나 최씨와 같이 살게 됐다. 이 이복동생은 직장도 없이 김씨의 연금과 저금통장을 다 맡아 펑펑 쓰고 있다.

37살의 정신지체 아들을 두고 있는 김모씨는 최근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바로 자신이 죽은 후 아이의 장래 때문이다. 김씨는 “그 동안 내가 과잉보호를 한 탓인지 그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내가 죽는 것은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데, 걔를 두고 가야한다는 두려움이 크다. 걔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는 지난 24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성년후견제추진연대가 주최한 사례발표회를 통해 소개된 사연들이다. 이외에도 이날 사례발표회에서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인권과 재산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장애인들과 노인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발표됐다.

이날 사례발표회를 통해 정책대안으로 제시된 성년후견제는 발달장애, 정신장애, 정신지체, 노인성 치매 등으로 인해 특정한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판단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이다.

타인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보증을 서는 등의 경우에 후견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거나 후견이 대리하게 함으로써 장애인이나 노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성년후견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한정치산·금치산자 제도와 대비된다. 한정치산·금치산 제도가 일률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행위 능력을 박탈 또는 제한하고 있는 반면 성년후견제는 본인의 잔존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게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특히 한정치산·금치산 제도는 보호기능은 미약한 반면 결혼을 제외한 재산권, 계약권, 직장 취업, 참정권 등의 권리를 정지시켜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폐해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정치산·금치산제도는 용어자체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는 지적, 한정치산·금치산 선고를 받으면 관보에 기재되고, 호적에 기재돼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지적 등도 뒤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서구 주요 국가들이 70년대부터 한정치산·금치산제도를 개정하거나 폐지해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으며, 지난 2000년 4월부터는 일본도 이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성년후견제 도입을 위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17개 단체가 모여 지난 2004년 10월 성년후견제추진연대를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출범 이후 설명회, 공청회, 워크숍, 사례발표회 등을 진행하며 성년후견제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하지만 성년후견제추진연대는 아직도 장애인 부모들이나 유관단체에서 성년후견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판단아래 앞으로 당분간은 각 단체별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방침이다. 이와 동시에 성년후견제추진연대는 내부에 꾸린 정책단을 통해 입법안을 완성하는 작업을 병행, 올해 말이나 내년 즈음에 법이 통과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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