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말’로 말 하듯, 국가는 ‘법으로’ 말한다. 국민에게 국가는 법을 만들며, 적용하며, 주장하며 뜻을 전한다. 법원의 판결, 국가의 반응도 어떤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맑은 9월 어느 날, 자신의 장애 자녀를 살해한 산모가 경찰에 자수를 해왔다. 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생기로 난 아이를 질식시킨 엄마의 고통이 어떠할지 감히 가늠이 안 된다. 자책과 후회도 오로지 홀로 감당할 그에게 어떤 위로도 위로되지 못하리라.

법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의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산모의 형량을 줄여주기로 했다. ‘산모가 피해자의 장애를 비관해 범행한 점과 본인의 죄를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을 유예키로 한 것이다. 법원의 이러한 배려 덕에 산모와 가족은, 어떠한 위로가 될 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엄중한 처벌은 면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대한 피해자가 발생된다. 바로 이 '배려'를 베푸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또한 ‘조용히’) 묻힌 생명권의 주체, 장애아 그 자신이다.

법원은 ‘산모의 사정’을 이해했다. 항소를 포기한 서울북부검찰청도 판결에 동의했다. 우리 사회는, ‘일각의 우려’를 제외하곤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장애아에 비관한 산모의 우발적 살인’에 대한 ‘배려’가 공감을 얻는 분위기이다. 살인죄에 대해 법원이 선처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 사유는 무엇이 특별했는가.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살인 피의자의 80% 이상이 우발적 범행이란 사실을. 그들 대부분이 법원 판사와 배심원의 마음을 흔들만한 사정을 가진 것이다. 약 20년간 남편의 폭력을 당해온 아내가 그를 죽이고 말았다. 법원은 아내의 상황과 사정을 고려해 8년형을 내렸다. 가해자의 사정이라도, 살인은 중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가해자의 사정이 어떠하더라도 꿈쩍하기 어렵던 올곧은 법원이 ‘피해자의 상태’ 앞에 흔들렸다. 피해자는 안면신경마비와 눈꺼풀 처짐 장애를 가진 상태였다. 법원은 가해자의 사정에 더하여 피해자의 장애 상태를 고려해 ‘정상을 참작하는’, 즉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인정’된다는 뜻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로써 법원은 이 살인사건의 특별성을 인정했다. 그냥 살인과 다른, ‘장애아’ 살인으로써 말이다.

법원 판결과 그에 대한 반응은 국가의 법치 의도를 가장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가치관의 적나라한 실상이 공개되고 선포된다. 산모에 대한 배려의 타당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초점은 다른 데 있음을 분명히 하겠다. 이번 판결이 품게 될 메시지는, '장애아산모 배려의 메시지' 뿐만이 아니다. 이는, 폭력남편의 죽음과 장애아의 죽음은 결국 달랐다는 메시지를, 어쩔 수 없이 국민 앞에 동시에 던지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우리 국민은 이 '말'에 어떻게 영향 받고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이 말을 통해, '법원의 판결'만을 바라봐선 안 된다. 법원까지 간 그 살인사건의 '배경'부터 보아야 할 것이다. 산모는 왜 자신의 아이를 죽여야 했는가. 생의 괴로움과 오점으로 남을 일을 저지르기까지, 오직 엄마의 나약함과 충동만이 작용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 후에 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를 논해야 할 것이다.

과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명확한 결론은 어려우므로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통해 침묵하고 있는 국가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자고 말을 걸 것인가. 어쨌든, '침묵'은 답이 아닌 것만은 확신한다.

*이 글은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에이블뉴스 독자 윤현경님이 보내왔습니다. 윤현경님은 장애문제에 대해서 온 사회가 귀 기울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밝혀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기고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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