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을 정치범으로 구속하는 나라는 아프리카에도 없다고 피켓을 걸고 있는 안산노동인권센터 이승택씨. ⓒ에이블뉴스

지난 5월 2일 촛불집회 1주년. 명동 밀리오레 근처의 계단에 앉아있던 지모(지적장애2급)씨는 갑자기 경찰들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하자 사람들과 함께 도망을 쳤고, 손에 들고 있던 박카스병을 경찰에게 던졌다.

지씨가 던진 병은 경찰 방패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고,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씨는 이 일로 공무집행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양천경찰서로 연행됐고, 지난 11일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이번 주 중으로 기소 여부가 판가름 날 예정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민주노동당장애인위원회는 20일 오전 서울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지적장애인을 정치범으로 구속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어느 곳에도 없다”며 “부당하게 구속된 지적장애인 지씨를 조속히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장애인단체들은 지씨가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조항은 ‘사법기관은 장애인이 형사 사법 절차에서 보호자, 변호인, 통역인, 진술보조인 등의 조력을 받기를 신청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해서는 아니되며,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진술로 인해 형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경찰은 지씨에게 진술거부권이나 조력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고, 경찰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 홀로 조사를 받게 했으며 구속결정과정에서도 지씨의 장애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결국 지씨를 구속한 경찰, 검찰, 법원은 모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집회현장도 아닌 곳에서 보호심리로 인해 일순간 음료수병을 던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과잉대응을 한 것”이라며 “당시 촛불시위 과정에서 기자, 일반시민, 심지어는 외국인까지 마구잡이로 연행된 사실을 감안해 볼 때 현재의 사법기관은 국민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이 현 정부의 충복 노릇을 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지씨와 함께 경찰서에 끌려갔던 안산노동인권센터 이승택씨는 “지씨가 바로 뒤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15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이 거의 다 유도심문을 통해서 진술을 받아냈다”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회 왔다고 하는데 너만 혼자 놀러왔다고 우기느냐’고 윽박지르니 자기가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던 지씨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씨는 하이서울페스티벌에 가서 물풍선을 터트리고 노는 것이나 박카스병을 던지는 것이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사람”이라며 “대한민국 검찰이 지씨를 잡아가둬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조은영 활동가는 “지적장애인을 부당하게 구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면서 “지난 3월에도 경찰은 지적장애인 임모씨를 홀로 조사하고 구속하는 등 장애인차별금지법 26조를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법으로 명시한 형사 사법절차에서 조력 받을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조사를 받아야했던 지적장애인에 대해 반복적인 차별과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 26조에 근거해 이번 사건을 지난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20일 오전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지적장애인 지모씨에 대한 구속 수사를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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