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차별철폐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 ⓒ에이블뉴스

안녕하세요? 저는 이윤선입니다. 춘천에 살고 지체 1급 장애인입니다. 2001년 한림대학교에 입학을 하여 4년 동안 사학 전공으로 학부 과정을 마쳤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거쳐 지난 2007년 8월에 한국근현대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에겐 어린 시절부터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비록 중증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능력으로 인정받고 기회가 된다면 강단에도 서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석사 과정을 마쳤으니 공부를 좀 더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지도 교수님과 지속적으로 박사 과정 진학에 대한 상의를 했고 드디어 작년 5월 교수님께서 저의 생각에 동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림대학교 사학과 박사 과정 입학전형에 지원했고 정상적으로 면접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이유는 단지 (장애 때문에) 자료를 찾으러 다니기가 힘들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이러한 결정의 부당함을 이야기 하고 결과 정정을 요청했지만 학교에선 저의 이야기를 그냥 무시해 버렸습니다.

저는 이 일을 장애 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오랜 조사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인권위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론 결과는 제가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박사과정 입학전형에서 불합격시킨 것은 분명한 차별 행위이고 이는 위법이며 이에 따라 학교에는 시정 권고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이후 학교의 태도는 정말 무책임하고 비양심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재심사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1년간의 진행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2008년 5월 한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전형

5월 22일 면접(18분가량 면접 진행, 사학과 박사과정 지원자 1명 이윤선)

5월 23일 지도교수 이메일로 불합격 통보

- 불합격 이유는 “면접위원들은 박사학위청구논문을 작성하려면 새로운 자료 발굴을 본인이 찾아다니며 하여야 할텐데,

그것이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네.

그러므로 많은 논의 끝에 면접에서 불합격으로 판정하였네."

불합격의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함,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판단, 면접 시에 대안도 제시하였음

- 박: 사료 발굴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모님이 지금까지처럼 도와주실 수 있고 전문보조인도 고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료 발굴의 문제는 저에게만 힘든 게 아닐 테고 앞으로 많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전형위원 세 명과 한림대학교 총장에게 이메일로 불합격 취소와 재검토 요청

- 장애를 이유로 한 입학거부임(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전형위원들과 총장은 위의 의견을 무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

- 무조건 교수들의 결정이 옳으니 그것을 받아들여라 하는 태도로 일관

6월 4일 대학원 홈페이지를 통해 최종 불합격 통보

6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를 이유로 한 입학거부’로 진정

조사과정

학교 측: 절대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을 결정한 것이 아님

입학전형의 내규에 따라 70점 커트라인에 69.33으로 불합격된 것

이윤선: 장애가 아니면 불합격할 이유가 전혀 없음

이전에 불합격된 사례도 없었고 전형에서 중요한 평가항목인 성적이 우수함(학부 총 평점 4.07, 석사과정 총 평점 4.44)

무엇보다도 지도교수가 보낸 이메일 내용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음

12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 심의

- 결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한림대학교에 시정 권고

2009년 2월 3일 결정문 완성

- 권고내용: 1. 피진정인 소속기관의 장인 한림대학교 총장에게, 진정인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고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방식을 제공하여 진정인이 재심사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한다.

2. 피진정인들에게 장애와 관련한 인권교육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

이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학교에서 어떠한 연락도 없었음

3월 13일 한림대학교 총장에게 인권위 권고에 따른 선행 요구 사항 제시, 발송

- 내용: 학교 측과 전형위원의 공개사과, 세 명 전형위원에 대한 정당한 처분, 인권위 결정문 피진정인 당사자 진술에 나온 평가가 정당한지 한림대학교 내 모든 교수들에게 공개

3월 18일 대학원에서 재심사를 받으러 오라는 우편이 도착

- 원하는 날짜, 원하는 방법으로 재심사를 진행할 것이니 3월 25일까지 의견을 제시 요청

총장에게 요구사항을 보낸 것이 먼저 이니 그 답변을 받아보고 재심사에 의견을 제시하겠다고 생각함

세 가지 요구 사항은 가장 기본적인 내용(최소한의 것),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재심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형식적인 것에 불과함)

4월 2일 대학원장의 이름으로 회신(총장님께 보낸 편지에 대한 회신)이 도착

- 세 가지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가 없음

총장에게 보낸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을 어째서 대학원장이 대신 하는 것인지….

교수님들께서는 처음부터 자신들이 잘못된 결정을 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도 교수님께 이메일로 불합격을 통보 받은 후 저는 “이것은 잘못이다.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다”라고 몇 차례 걸쳐 말씀을 드렸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고려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된 것 자체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분명히 잘못된 결정을 하였음에도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교수님들의 태도에 더욱더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교수의 결정이라도 잘못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제자가 지적한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이고 잘못을 고치는 게 진정한 교수의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의 입학전형에 참여한 세 분 교수님의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교수님들이 하신 답변들은 더더욱 저를 실망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불합격의 이유가 장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규 채점표에 나와 있지도 않은 소수 둘째 자리까지 점수를 만들어 내시고 제자를 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으시고…. 7년간 함께 공부를 했고 그동안 제가 어떻게 공부를 하였는지 모두 다 지켜보아 오신 분들이 어떻게 자신의 제자를 그렇게 안 좋게 평가를 할 수가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권위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세 분 교수님도 분명히 아셨을 겁니다. 자신들이 잘못된 결정을 하였다는 것을…. 저는 또 다시 기다렸습니다. 교수님들이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을 가지셨다면, 그런 게 아직 교수님들께 남아있다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인권위 결정이 난 후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전혀 연락도 없다가 재심사를 하겠으니 의견을 제시하라는 내용의 우편 하나를 달랑 보내 왔습니다. 정말 이것이 다일까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단지 재심사를 받는 것뿐일까요? 저는 교수님들의 진심을 바라고 또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교수님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한순간 잘못된 결정을 할 수가 있고 그 후에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총장님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선행 요구 사항에 대한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3주 후 저에게 온 것은 총장이 직접 쓴 것도 아닌 대학원장의 회신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총장의 무책임한 태도에 다시 한 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에 대한 사과와 전형 위원들에 대한 정당한 처분도 없이 어떻게 저에게 재심사를 받으라는 것일까요? 장애를 이유로 저를 불합격시킨 전형 위원들이 또 다시 저를 심사하고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다면, 또 다른 편견과 차별로 제게 불이익을 주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과연 있을까요? 이것이 진정 저에게 한림대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조치만 진행시키면서 실제로는 저를 오지 말라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근본적으로 교수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면, 재심사를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번 일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 글은 장애를 이유로 박사과정 불합격 처분을 당한 한림대 사학과 이윤선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