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마트에 비치된 장애아동을 위한 카트. ⓒ이유니

딸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고 나서 내 인생에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어떤 문구에서도 장애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일에도 신경이 쓰이고 장애 아이들을 위한 펀드레이징이나 행사에도 자연스레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느끼게 된 게 미국에는 장애 아이들만을 위한 행사가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것이었다.

작년에만 해도 아이를 데리고 장애 아이들만을 위한 하와이의 유일한 워터 파크에서 진행되었던 챔피언스 데이( Champion’s Day), 트렘폴린장을 대여했던 이벤트, 낚시와 피크닉을 하는 행사, 산타와 사진을 찍는 시간을 마련해준 크리스마스 행사, 소리와 빛에 민감한 자폐증 아이들만을 위해 영화 상영관 하나를 대여해서 너무 어둡지 않게, 너무 시끄럽지 않게, 그리고 마음껏 돌아다니고 소리를 내도되는 영화 이벤트, 우리가 너무 사랑하는 매달 서핑 이벤트까지 포함하면 우리의 일 년은 이런 이벤트들에서 열심히 노는 걸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그리고 이 주 전에는 텍사스 샌안토니오의 아이들 체험 박물관에서 진행한 비욘드 리밋(Beyond Limits)이라는 또 다른 장애 아이들만을 위한 행사에 다녀왔다.

이 행사 역시 장애가 있는 아이들만을 위해 오전 내내 체험 박물관을 대여하는 행사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입장권은 물론 무료이다.

현재 미국의 대부분 시설은 신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이용에는 불편함이 없게 이미 설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벤트에서 실질적으로 주로 배려하게 되는 부분은 발달 장애나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편의 제공이다.

소리나 빛에 민감한 자폐증 아이들을 위해 이런 자극을 줄이고 조용하게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마련해주고 어떤 돌발 행동도 민폐로 보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행사만큼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데려가기 편한 곳은 없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다녀온 행사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는 일을 못한다. 하긴 사람들 눈 맞추는 것도 힘든 아이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산타 할아버지를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이런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겨울마다 자폐증 기관과 함께 몇몇 백화점들이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 찍기 행사를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만을 위해 마련해 주었다.

아이가 자폐증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친절한 산타 할아버지의 노력과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아이들에게 익숙한 사진사는 사진기를 보라고 청하는 대신 아이의 시선을 따라 아이를 제외한 우리 부모와 산타 할아버지를 계속 이동하도록 요청하였다. 덕분에 결국 처음으로 우리는 산타와 함께 찍는 크리스마스 사진을 성공한 기억이 난다.

사실 산타랑 사진 찍는 일 같은 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지만, 그렇게 사소한 일조차 쉽게 해내지 못하는 딸을 볼 때 속상하고 무너지는 마음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행사들이 우리 같은 가족들에게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다른 아이들이 즐기는 모든 즐거움을 동등하게 누리게 된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장점은 이런 행사들을 통해 감히 시도해 볼 용기조차 나지 않던 일들 혹은 시도했다 실패했던 일들을 시도해 봄으로서 우리끼리 한번 다시 와볼까 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행사를 위해 무료로 장소를 내주었던 영리 기관들도 단골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니 감히 윈윈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도 하다.

지난주에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자 가장 많은 체인점을 가진 대형 마트에 다녀왔다. 마트 입구에서 카트를 빼는데 독특하게 생긴 카트가 눈에 들어왔다. 캐롤린의 카트, 라고 적혀있는 이 카트는 제법 큰 아이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앞에 있고 그 뒤로 바구니가 달려있다.

뉴스에서 본 기억이 문득 났다. 부모들이 이제 제법 몸이 커진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장을 볼 때, 아이가 사용하는 휠체어에는 넉넉한 장바구니가 없고, 장애인 분들이 이용하는 전동 마트 전용 휠체어는 아이들이 혼자서 작동을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린아이들을 앉히는 좌석이 달린 카트를 사용할 수 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더 이상 거기에 몸이 맞지 않는다. 이런 불편함을 듣고 특별히 개발된 큰 아이들을 위한 장애인용 카트인 셈이다. 다른 카트들과 나란히 준비된 특별한 카트를 보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미국에서 장애인들을 보는 관점은 장애가 없는 이들이 누리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누리고 즐길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당연하게 하기 힘든 장애를 가진 분들이나 이런 아이를 둔 부모에게 일상의 작은 벽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 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좌절감이다.

이 좌절감이 좌절에 그치지 않고 작은 배려를 통해 끊임없이 벽을 허물어 주기, 모든 선진 사회라면 당연히 해야 하고 앞으로 계속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닐까,

저 카트를 준비해준 마트에 '좋아요'를 백 개 정도 눌러주고 싶은 심정으로 마트를 떠났다. 이제부터 장은 이곳에서 주로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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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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