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후 외래 진료를 하고 있는데 피곤에 지친 척수장애인 A씨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며칠 전부터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고생만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문한 병원에서는 접수도 안 받아주고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근처의 큰 병원으로 갔더니 단층촬영(CT)만 찍고 열이 나는 것에 대한 검사는 하지도 않고 아무런 치료도 없이 대학병원으로 가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다시 또 장애인콜택시를 불러서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A씨는 속상했다.

A씨는 요즘같이 온 나라가 메르스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열이 난다고 대학병원에 가봐야 엄청나게 고생하면서 천막에 격리되어 검사를 하게 될 것이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메르스에 걸릴 것이 걱정되어, 대학병원을 가지 않고 국립재활병원으로 와서 진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의료기관들이 메르스의 공포에 떨고 있다. 열나는 환자를 진료하다가 나중에 메르스 환자로 판명이 되면 정말 큰 일이 나기 때문이다. 한 명이라도 환자가 발생하면 메르스 발생한 병원이라고 딱지가 붙고, 자세히 진료하지 않고 큰 병원으로 보내더라도 역시 메르스 환자가 경유한 병원이라는 딱지가 붙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진, 직원, 옆에 있던 환자들까지 온통 격리가 되어 병원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열나는 환자는 아예 진료조차 안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열로 외래로 찾아온 A씨를 진료하면서 불안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만일 이 환자가 메르스 환자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오늘 외래 진료실을 찾아온 모든 환자들을 추적하여 격리시켜야 하고, 나를 포함한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 기사 등 접촉한 직원들은 격리되어야 되는데, 양성판정이 늦게 나와서 하루 이틀 회진을 돌면 내가 만났던 모든 입원 환자들도 격리대상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면 당분간 국립재활원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타 병원에서 열나는 환자를 아예 진료도 하지 않고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A씨의 증상은 명확한 요로감염(방광염)이 의심되는 소견이었다. 소변이 탁해지고 붉어지면서 열이 났기 때문이다. 며칠을 명백한 요로감염 증상으로 고생 했지만 이전 병원들에서는 기본적인 소변검사 못 받았고 항생제 처방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소변검사 결과를 보았더니 역시나 심한 요로감염의 결과가 나왔고, 한쪽 고환이 계란만큼 커지는 증상이 나타나 있었다. 전형적인 부고환염 증상이었다. 항생제와 해열제를 처방하여 집으로 가서 쉬라고 이야기하였다.

지금 대한민국에 A씨처럼 열이 나서 병원에 갔다가 진료는 못 받고 고생만하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걱정이 된다. 공포에 사로잡힌 병원들의 사정도 이해는 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평소에도 갈 수 있는 병원이 가뜩이나 제한되어 있는데, 메르스 공포가 병원들을 덮친 상황에서는 진료를 받을 병원을 찾기 힘든 장애인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장애인들이 대한민국 메르스 공포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르스 공포가 병원들만 떨게 하는 것이 아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장애인 환자들에게도 덮치고 있다. 지금 여러 재활병원들에서는 옆의 환자가 열이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 얼굴을 붉히고 다툼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불안하여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병원에 있다가 재활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기존 병실의 장애인 환자들이 새로 입원하는 사람이 어느 병원에서 왔는지, 열은 나는지, 기침을 하는지 등을 눈에 불을 켜고 따지고 있다.

모 재활병원에서는 새로운 환자가 입원하는 날 단지 기침 몇 번 한 것만 가지고 병실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 새로운 환자가 병실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처치실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다. 전혀 격리 대상인 아닌 사람을 동료 장애인 환자들이 강제로 격리하려고 한 것이다. 메르스에 대한 극심한 공포 때문에 이러한 웃지 못 할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메르스로 난리가 났더라도 우리는 냉정을 찾아야 한다. 우선 메르스에 대해서 불필요한 공포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는 겨울철 독감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 정도로 생각하면 되며, 메르스 바이러스는 오히려 독감 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 나라가 메르스에 대해서 과도하게 걱정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노력하되 너무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신종플루, 사스, 독감은 지역사회에서 쉽게 퍼지는 질병이었지만, 메르스는 병원 내에서 밀접하게 접촉한 경우에만 전염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대유행이 될 가능성도 낮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국가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장애인들은 진료를 받기 더 어려워져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메르스 사태가 진정이 될 때까지 장애인들의 의료 접근성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범석님은 RI KOREA 건강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국립재활원 병원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RI KOREA(한국장애인재활협회 전문위원회)'는 국내·외 장애 정책과 현안에 대한 공유와 대응을 위해 1999년 결성됐다. 현재 10개 분과와 2개의 특별위원회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전략 이행,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국내외 현안에 관한 내용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