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라도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끼기 위해 방치되고 버려진 극한상태의 끝까지 자발적으로 걸어간다. ⓒkbs 방송 화면 캡쳐

이동욱 씨의 레이스 목표가 남달랐다. 가혹한 사막을 완주해서 암으로 투병 중인 장인어른에게 희망을 심어 드리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부차적으로는 모교의 발전 기금 모금을 위한 홍보를 하기 위해 레이스를 한다고 했다.

“송 관장, 내가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합니다. 인백 씨가 곁에 있어서 안심이 되긴 합니다만.”

이동욱 씨는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도 진심으로 도움을 못 줘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정혜경 씨는 여성인데도 별로 탈진한 것 같지 않았다.

“이 사장님, 김삿갓 모자는 어떡하셨어요?”

인백 씨가 사막의 강렬한 햇볕을 막기 위해 썼던 양산처럼 챙이 넓은 모자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데다 거추장스러워서 버렸어요.”

모래구릉 위로 올라가자 앞쪽에서 하르마탄이라고 하는 모래먼지를 동반한 건조한 열풍이 불어왔다.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두터운 막을 헤치듯이 하르마탄을 헤치고 구릉 아래로 내려갔다.

사막은 잠시도 침입자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어떤 수단으로라도 이 일단의 침입자들을 응징했다. 하르마탄을 헤치고 모래구릉 지대를 벗어나자 지면이 눈부신 백색 대지가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모두들 눈부신 백색대지에 도취되어 탄성을 질렀다.

나는 이 눈부신 대지가 또 어떤 방법으로 침입자들을 응징할까를 생각하며 힘을 끌어 모았다. 눈앞에 펼쳐진 백색대지는 모든 걸 증발시켜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은연 중에 느끼게 했다.

사막의 고유한 속성은 증발이다. 수분, 생명, 강, 호수, 왕국까지도 사막에서는 증발한다. 사막의 역사까지도 증발한다.

나는 이 미증유의 증발의 대지에 서서 한 방울의 물방울 같은 내 존재에 대해 새로운 경이를 느꼈다. 한 방울의 물처럼 곧 증발해버린다 해도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후의 궤적은 내 존재에 대해 경이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살아남는 규칙이나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서보다는 의도적으로 극한 상황에 뛰어드는 것은 실험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준 밖에서 나의 행동을 시험하는 것만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규범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내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삶의 자극조차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던 시대에는 고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하나의 길을 쫓지 않고 어떤 규제나 통제도 받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서 세계를 횡단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이것은 무정부주의적인 인간의 꿈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낭만주의자처럼 소박한 삶 속에서 피어나는 이상을 꿈꾼다. 그렇게 하려면 불가피하게 삶의 실존적인 축소가 일어난다. 본질적인 것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라도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끼기 위해 방치되고 버려진 극한상태의 끝까지 자발적으로 걸어간다.

절망적인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나면 삶은 더욱 더 큰 선물처럼 여겨지며 풍요로워진다. 이처럼 우리 삶에 걸맞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계속 극한을 향해 나아간다. 밖에서 보면 그 한계에 끝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나는 종종 질문을 받는다. 시각장애인이 무엇 때문에 그런 극한의 환경에 도전을 하느냐고. 나는 그럴 때마다 몹시 화가 난다. 그런 질문은 그의 관점과 통념에 맞춘 것이지 나를 고려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질문을 받고나면 어떤 본능에 의한 불안이 생긴다는 점이다. 떠나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면 나는 늘 불안한 꿈들을 계속 꾸었다.

백색의 대지는 우아함 속에 잔인함을 감추고 있었다. 백색대지의 복사열은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가차없이 무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체액이 말라드는 고통과 생명이 증발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백색 대지를 걷는 걸음을 빨리했다. 모두의 발바닥은 걸음을 빨리 하기에는 부적절한 상처투성이다.

우리는 모두 극한의 고통을 동반한 채 외계의 혹성 표면 같은 대지를 걷고 있었다. 고통을 누르는 침묵과 상처의 신경세포와 맞서는 인내로 백색대지를 벗어났다.

“관장님, 저기 언덕에 오아시스가 보여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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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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