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열린 모로코 마라케시 WIPO 조약 회의. ⓒ서인환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예외적용 규정의 발전을 보면, 최초로 1986년에 처음으로 신설되었다. ‘공표된 저작물’을 점자로 제작하고, 녹음할 수 있다. 점자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녹음은 지정된 기관에서 비영리로 제작할 수 있으며, 그 이용 역시 시각장애인만이 이용 가능하다.

점자는 시각장애인만이 이용하는 문자이므로 특별한 대상이나 제작자 기준이 없다. 시각장애인 기관이 직접 녹음하거나 의뢰받은 봉사자 등이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인적으로 녹음해 주는 것 역시 저작권에 위배된다. 선의로 개인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해 주는 것이 법적으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2000년에 저작권법이 개정되어 제작만이 아니라 배포에 대하여도 허용하는 것으로 추가되었지만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저작권은 제작, 복재, 배포로 나눌 수 있는데, 배포까지 허용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 저작권법은 2001년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전자파일에 대하여 시각장애인 전용기록방식으로 제작할 경우에도 저작권 예외로 하는 법이 통과되자, 한국에서도 자극을 받아 2003년 저작권법을 개정하여 전용기록방식의 전자파일에 대하여도 제작, 복재, 배포가 가능하도록 개정하였다.(저작권법 제33조)

그렇지만 ‘전용기록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전용기록방식’에 대한 시행령상의 내용은 2009년에 와서 구체화되었다.

시행령 제14조 2항에서 점자전자기록방식과 음성출력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기록방식, 표준화된 음성디지털기록방식, 시각장애인만 이용가능하도록 기술적 조치가 된 기록방식이 그것이다. 이로써 데이지가 포함되게 되었다.

2013년 7월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영상자료 제작도 저작권 예외 규정이 신설되었는데, 이는 누구나 제작이 가능하며 청각장애인만이 이용가능하다거나 청각장애인 기관에서 제작하여야 한다는 규제조항은 없다.

그리고 2009년에 개정된 도서관법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의 제작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국립중앙도서관장이 출판사로부터 디지털파일로도 납본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도서관법 제20조)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서는 1981년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시각 및 청각장애자들의 저작권에 관한 출판물 접근에 관한 작업반(Working Group on Access by the Visually and Auditory Handicapped to Material Reproducing Works Produced by Copyright)”을 구성하여 83년 결과물을 발표한 바 있고, 1984년 설립된 세계맹인연합(WBU)에서도 시각장애인의 저작물 접근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WBU는 2002년 WIPO 저작물접근상임위원회(SCCR) 제7차 회의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권 예외법률이 없는 개발도상국 등 여러 나라가 있으며,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가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어렵게 함을 보고하였다.

2003년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린 SCCR 제10차 회의의 “시작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콘튼츠에 관한 WIPO 정보 회의(WIPO Information Meeting on Digital Content for the Visually Impaired)”에서 WBU는 이 문제를 재차 강조하였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비영리로 특별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경우 저작권 허락 절차 없이 가능하게 하애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칠레 대표는 SCCR 제12차회의(2004년 11월)에 “저작권에 대한 예외와 제한”이라는 제안서를 제출하고, 교육 목적, 도서관 및 장애인을 위한 예외와 제한에 관한 주제를 제12차회의에서 포함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2005년 11월에 열린 SCCR 제13차 회에서는 자신들의 제안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2008년 3월에 열린 SCCR 제16차 회의에서 브라질, 칠레, 니카라과이 그리고 우르과이가 공식적으로 제한과 예외에 관한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WBU와 Knowledge Ecology International(KEI)은 2008년 7월 24일과 25일에 걸쳐 이 문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전문가 회의를 가졌다. WBU와 KEI는 2008년 11월에 열린 SCCR 제17차 회의 동안에 독서 권리에 관한 부속 행사를 가졌다. 2009년 3월에 열린 SCCR 제18차 회의에서 브라질, 에쿠아도르 그리고 파라과이가 WBU의 조약안을 상정했다.

WBU 조약안이 상정된 SCCR 제18차 회의에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와 인도·자마이카 등은 조약안을 지지하고 성안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주문했고, 중국과 캐나다 등은 조약 제안을 환영하면서도 국내 논의가 필요하여 다음 회의에 입장을 밝히기로 하였다.

이에 반해 미국, 일본, EU, 스위스 등은 조약을 대체할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해 12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19차 회의에서는 마라케시 회의에서 조약으로 채택하기로 하였고, 2003년 6월 27일 마라케시 조약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조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비영리 사업으로 국가가 인정한 기관에서 특정한 시각장애인 전용기록방식으로 기술적 조치를 한 어문 텍스트에 대하여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경우에 한하여 저작권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국제적 유통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법에서 이미 정한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며, 미국이나 일본에서 원서를 대출받아 사용하고 있는 한국의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사실 별다른 발전이 없는 셈이다.

다만 국제법으로 정하여져서 그러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나라에까지 확대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촉진의 효과이지 각국의 비준이 남아 있어 바로 발효되는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보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서로 타협하는 모습은 합의라는 장점도 있지만, 장애인의 정보접근 권리를 타협하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상업적으로 저작권자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공하는 경우에는 아무리 시각장애 기관이 비영리로 한다고 하여도 저작권 예외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일일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가와 그러한 절차의 번거로움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상업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물을 생산할 경우 수익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목적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저작권 위반이 된다.

기술적 조치란 자료의 비장애인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그 비용을 시각장애인 또는 시각장애인 기관이 부담하는 것도 부당하다.

영화의 경우 자막이나 화면해설은 영화제작사가 장애인접근성을 위해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면, 웹접근성의 비용을 시각장애인이 부담하는 것이 아닌데, 어문 저작물은 저작자는 접근성을 보장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제작비용을 들이거나 보장하지 않고 대체물 제작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혜를 준 것 같은 인상이 짙다.

그리고 어문으로 제한함으로써 영상물의 화면해설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국제 유통은 동일 언어문화권에서는 이득이 있겠으나, 한국의 경우 외국의 시각장애인 대체자료를 번역하여 다시 대체자료화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번역판에 대한 대체자료는 허용되지만 이것에는 사업성이 없어 자료화되기는 쉽지 않다.

국제저작권법 성격이므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개발을 위한 기구나 사업의 각 정부의 지원까지 다룰 수 없는 한계는 인정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지식접근권을 저작권자의 저작권 보호와 타협하는 선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작권자가 시각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의무가 명시되어 시각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출판물 접근의 대체자료가 불과 5% 이내에 불과한 지식 갈증과 시각장애인의 지식화와 정보화에 대한 기대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점은 앞으로의 과제라 하겠다.

10월 11일 이룸센터에서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학습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시각장애인 저작권 정책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서 정은영 문화부 문화통상서기관, 남형두 연세대학교 법대 교수, 조형근 국회 입법조사관 등은 마라케시 조약에 큰 의미를 두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마라케시 조약에 대하여 여러 장애인단체가 환영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으나, 사실 국내법상 달라질 것이 별로 없으며, 시각장애인의 지식접근권 확보에 미칠 영향은 거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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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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