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초상(사진 출처 : wikipedia) ⓒ이광원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에서, 신(神) 중심적인 형이상학의 개념을 인간 중심적인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칸트에 따르면 진리의 인식은 감성(感性)과 오성(悟性, ‘사고능력’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주변의 다양하고 무질서한 감각자료(sense data)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질료(質料)’를 내 주관기능인 ‘형식(形式)’이 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구성함으로써 비로소 그 대상이 ‘인식’되고 ‘존재’하게 된다.

즉, 대상은 주관에 의해서 구성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 구성설(構成說, Construction Theory)’의 핵심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는 어떤 자연현상이 인과적(因果的)으로 변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주관적 인식과 관계없이 자연 자체적으로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이 ‘인과’라는 범주로 질료를 구성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은 자연의 입법자’라고 말하였다.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는 이 ‘칸트의 구성설’을 ‘이 세계는 감각기관에 의해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험적(先驗的) 의식이 구성해내는 것이다.’라고 알기 쉽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선험적이라는 것은 그 자신이 선천적이면서 후천적인 경험과 결합하여 학적경험(學的經驗)을 형성하는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칸트의 철학은 주관의 이런 선험적 형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선험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결국 ‘세상은 조물주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오성의 범주가 창조한 것’이란 차원으로, 그동안 신에게 종속된 피조물로 규정되어왔던 인간을 ‘세상을 창조해내는 주체’로 달리 바라보게 되면서 ‘근대적 인간관’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돼지의 눈에 비친 진주나 다이아몬드는 보통의 돌멩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감각기관을 통과한 (돌멩이와 비슷하게 생긴) 진주나 다이아몬드라는 ‘질료’를 (돼지와는 다른) 나의 선험적 의식이 비로소 ‘보석’이라고 구성해내면서 그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진주나 다이아몬드는 나에 의해 빛나는 보석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결국 보석은 조물주나 자연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내가(인간이), 혹은 내(인간의) 오성의 범주가 창조한 것이다.

자립생활의 창시자 에드 로버츠를 기리기기 위해 지어진, 에드 로버츠 캠퍼스의 주출입구 모습(사진 출처: archdaily) ⓒTim Griffith

‘자립생활’은 제도와 서비스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24시간 완벽하게 제공되고, 배리어프리한 주거 환경, 소득보장 및 훌륭한 교통서비스들이 주어짐에 따라 부모나 시설에 의존하여 살아왔던 중증장애인이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진정한 자립생활이 성취됐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자립생활을 위한 제도와 서비스들은 자립생활을 위한 ‘필요조건’에는 틀림없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진정한 자립생활을 성취하려면 나 자신이 완벽한 내 삶의 ‘주체’가 되어야만 한다.

내 감각기관들을 통하여 들어오는 온갖 감각자료(sense data)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질료’ 상태에 머물게 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을 내 오성의 범주로 재창조하고 규정함으로써 칸트가 말하는 ‘자연의 입법자’가 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 때야 비로소 진정한 자립생활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자연의 입법자’이자 ‘세상의 중심’이며, 세상의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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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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