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아이들>은 자폐성 장애아이를 키운 경험담 뿐만 아니라 자폐증 역사 및 다양한 나라에서의 인식과 차이를 인류학 관점에서 풀어냈다. ⓒ애플트리테일즈

“미국은 장애인 천국이라는데 이민이라도 가야 할까봐요.”

자폐성 장애 아이를 키우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한번씩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공공장소거나 말거나 산만하게 헤집고 다니는 아이. 머리칼이 헝클어지도록 그 뒤를 쫓고 있는데 “자식 교육을 대체 어떻게 시켜 이러느냐” 날카로운 힐난이 날아올 때. 입학식을 치르기도 전에 “이런 애는 받을 수 없어요” 코앞에서 학교 문이 쾅 닫힐 때는 어떻고.

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가 낸 <낯설지 않은 아이들>(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 애플트리테일즈 펴냄)는 그에 대한 종합 보고서로 읽힌다. 그 또한 자폐성 장애 아이의 아버지. 자칫하면 장애아 부모의 수기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그의 글은 수많은 취재와 연구, 경험담이 절묘하게 섞여, 잡힐 듯 말 듯한 자폐성 장애를 깊이 있게 파헤쳐 준다.

첫딸 이사벨이 자폐증 판정을 받았을 때가 생후 2년 6개월이던 1994년. 할아버지 때부터 저명한 정신과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데다 아내 또한 정신과 의사. 하지만 의레 넘어야 하는 통과의례는 그들이라고 지나쳐 가지 않았다. ‘조절장애’라거나 ‘전반적 발달지체’란 모호한 병명을 거치면서, 원인은 전문직 엄마 때문이라는 잘못된 진단에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만큼 자폐증은 낯선 병이었다.

학교 측을 상대로 설전을 벌인 일도 있었다. 통합교육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사벨에게 일 대 일로 도움을 줄 보조교사가 절실했다.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원하는 부모들은 미국 장애인교육법에 근거, 소송을 제기해야 했는데 싸움닭 같은 정부 측 변호사를 이길 확률은 거의 희박했다. 그는 변호사, 소아정신과 전문의까지 대동하고 주 당국에서 나온 특수교육 전문 변호사, 학교 관계자들 앞에서 그에 대한 필요성을 또박또박 따졌다.

그린커 교수의 경우에는 철저한 준비로 뜻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적 타격에 시달린 부모들은 돈만 탕진하는 법정 투쟁을 치르느니 차라리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는 쪽을 택했다. 메릴랜드를 떠나 뉴저지로 간다거나, 캐나다라면 서스캐처원 대신 바로 옆인 앨버타 주로 떠나는 식으로. 그 해 예산이 어디에 몰리느냐에 따라 지적장애나 복합장애 등으로 아예 장애 코드를 변경하는 편법까지 동원되는 것이 미국의 현실.

학자적 탐구열로 그는 3년간 미국, 한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 나라마다 자폐성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폈다. 나바호족 인디언은 영혼의 부조화가 겉으로 발현된 것으로 믿고 자해하는 아이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인도에서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성인으로 추앙하는 관습에 따라 신성시하는 지역까지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아이를 주술사에게 데려가 조상신을 달래는 푸닥거리를 한다. 프랑스에선 2004년까지도 자폐증을 정신병 분류 안에 넣었다.

필시 한국계 미국인 아내의 영향일 텐데, 그린커 교수는 이 책 일부분을 뚝 떼어 한국 상황을 비중 있게 다뤘다. ‘자폐증’이라는 병명보다는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오진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와 영화 <말아톤>으로 인해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는 것. 고전문학 <춘향전>까지 인용할 정도로 한국 문화와 정서에 대한 그의 이해는 폭 넓다.

조지워싱턴대 로이 리처드 그린커 교수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딸 때문에 ‘자폐 전문가’가 되었다. ⓒ애플트리테일즈

1943년 레오 칸너가 자폐증은 생물학적 장애라고 밝힌 이후, 최근 십여 년간 자폐성 장애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그것은 자폐 유병률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고 자폐증을 인식하는 상황이 달라진 것에 기인한다. 자폐증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어서 유전되지 않는다. 부모 탓도 아니다.

예전 같으면 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이들과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아이까지 이들은 ‘자폐 스펙트럼’의 광범위한 틀 안에 함께한다. 그린커 교수의 딸이 그러하듯이 이제 그들은 집안의 수치로 여겨져 숨어 살지 않는다. 우리 곁에서 교육과 치료를 받는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린커 교수는 “이사벨은 우리를 더 나은 부모로 만들어주었고 동생 올리비아를 더 인격적이고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라고 한다. 그는 자폐성 장애의 미래를 희망에 차서 바라본다. “장애를 가지고는 있지만 올바른 교육적 보조가 주어졌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사회에 기여하게 될지 상상해 보라!”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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