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수화 인정’은 긍정적…‘문화 인정’은 논란
세계청각장애인협회 “문화 실존…인정해야”
벌써 회의는 2주일을 채우고 있다. 뉴욕의 1월 27일, 한국은 설날 연휴로 들떠 있을 텐데, 한국의 NGO와 정부대표단은 유엔센터에서의 강행군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대표단에게 설날을 실감하게 한 것은 한국처럼 음력설을 치르는 중국대표단이 “Happy new year!"라고 인사할 때였다. 권리조약회의 제10일째, 이날은 권리조약 의장안 제29조 정치와 공적 생활 참여와 제30조 문화생활,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과 스포츠 참여에 대해 논의했다.
제29조 정치와 공적 생활 참여
본 조항은, 장애인도 사회구성원의 한 일원으로써 각 당사국이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장애인에게 실현하기 위한 각종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조항으로써, 정당 활동 및 정치와 선거에 참여할 권리까지를 포함한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본 조항에 대해서는 모든 당사국이 특별한 반대 혹은 제안은 없는 편이었고, 대개 본 조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많았다.
구체적인 논의내용을 보면, 우선 의장은 IDC가 제안한 새로운 c호(장애인의 정책 참여와 주도적 역할)의 추가에 대해, 유사한 내용을 이미 제4조 3항에서 다루고 있으므로 추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1항 a호 '적절한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이라는 표현을 삽입하여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접근성을 강조하기를 제안했다. 여기에 대해 중국이 투표는 정치적 권한이므로 합리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또한 이란은 비밀투표가 규범적 용어이므로 이를 삭제할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 대해 미국, 일본, 자메이카 등은 비밀투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특별한 쟁점 없어…대부분 중요성 인정
마지막 쟁점으로 캐나다가 제안한 내용이 다루어졌다. 캐나다는 제a호와 관련하여 장애인의 정치참여와 공적 생활의 참여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조항에서 법적 조치 등에 의해 보장한다는 의미의 ‘ensure’ 대신 도덕적·규범적으로 약속한다는 의미의 ‘obligate’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캐나다는, 연방제를 사용하는 국가의 예를 들면서 각 연방마다 다소간의 선거제도나 공적생활의 참여방법이 상이할 수 있으므로 국가가 이를 획일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캐나다의 견해에 대해 예멘이 동의했다.
한편 비슷한 관점에서 국가적 수준의 법률이라는 의미의 'national laws'라는 표현을 수정할 것을 캐나다가 제안했는데, 여기에 대해 예멘과 시에라리온은 연방제 국가의 경우를 고려하여 ‘national’이라는 용어만 삭제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멕시코와 중국은 적용 가능한 법률이라는 의미의 ‘applicable laws’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 의장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약속했다.
제30조 문화생활,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과 스포츠 참여
제30조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가 3항에 명시된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를 ‘저작권(copyright)’로 수정하자는 것과 4항에 규정된 청각장애인의 문화와 수화에 대한 논의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논란이 된 것은 청각장애인과 수화에 관한 것.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뉴질랜드 대표는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마우리족의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도 수화하는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언어방식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은 모든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제안했다.
수화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문화 ‘논란’
여기에 대해 노르웨이는 원주민문화를 본 조항에 포함시키는 것은 다른 소수집단의 문화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것이 새로운 차별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원주민문화의 존중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예멘은 청각장애인의 문화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문이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각국의 사회가 가지는 대중적 문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청각장애인문화(deaf culture)’를 국민 혹은 ‘민족문화(national culture)’로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예멘대표는 ‘수화(sign language)’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의장은 당사자의 견해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밝히며 세계청각장애인협회 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출석한 청각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이미 몇몇 대학에서 청각장애인의 문화에 대해 연구했다고 말하고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완전한 시각적 표현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낸다고 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 사회가 가지는 역사나 규범과 관련이 있다고 하며 청각장애인들은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시를 쓰고 읽으며 영화를 보고 연극을 한다고 하며 청각장애인만의 문화는 실제 존재하고 있고 이를 존중해 달라고 발언했다.
여기에 대해 러시아는 청각장애인문화의 실존여부와 상관없이 이를 본 조항에서 다룬다면 다른 장애영역의 문화의 배제문제나 기존 사회문화와의 결합문제 등 새로운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란은 집단이 가지는 문화가 다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청각장애인문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을 제안한다고 발언했다.
또 카타르는 수화와 같은 의사소통방식이 있다면 충분히 대중문화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고 그렇다면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의 문화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요르단은 행동양식이나 의사소통의 방식이 다르다면 같은 행동양식이나 의사소통방식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인정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제안했으며, IDC를 대표하여 발언한 대표들은 많은 국가들은 여러 소수집단과 부족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대로의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들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에 속한 장애인들의 문화도 부정될 것이라고 하며 청각장애인과 소수집단 및 원주민의 문화를 인정해 달라고 제안했다.
이날 논의에서 수화에 대한 내용에는 반대가 없었지만 문화에 대한 부분에서 열띤 토론이 이루어진 것은 그 만큼 많은 국가들이 청각장애인으로 대표되는 장애인들의 하위문화에 대한 배려가 적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이 좋을까? 저작권이 좋을까?
이날 또 다른 쟁점은 지적재산권에 관한 것이었다. 지적재산권은 시각장애인의 점자책과 청각장애인에게는 영상물의 캡션 및 자막처리와 관련된 사항이다. 지적재산권을 저작권으로 수정하자는 제안은 캐나다가 했다. 캐나다는 보다 넓은 의미로 활용되는 저작권이 지적재산권이라는 말보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캐나다의 제안에 대해 미국이 동의했고 IDC에서는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가 포함된 제30조 3항 자체를 접근권을 다루는 조항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호주는 3항의 내용이 기존의 국제협약이나 조약의 내용과 상충하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으며 이러한 견해에 대해 노르웨이가 찬성했다. 말리는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부분에 예술적 측면도 고려하여 관련 용어를 삽입하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케냐와 나이지리아는 제3항과 관련해 국제법이라는 말을 삭제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형평성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30조에 관한 논의에 대해 의장은 저작권이 지적재산권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국제법이나 조약을 고려하여 지적재산권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화와 청각장애인문화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란이 있었지만 적절한 대체표현에 대해서 추가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별히 반대한 국가에서는 적절한 대체표현을 제안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제29조 정치와 공적 생활 참여
당사국들은 장애인의 정치적인 권리 및 기회를 보장하여 그들이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본 권리들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사항을 실행한다.
(a) 직접 혹은 민주적으로 대표자들을 선출했던,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국내법에 준하여, 평등하게 투표하고 선출될 수 있는 장애인의 권리와 기회를 포함하여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정치 및 공적 생활에 효과적이고 완벽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다음의 사항을 통해 보장한다.
(i) 투표하는 절차, 시설 및 자료가 적절하고 접근가능하며 사용 및 이해하기 쉽도록 보장
(ii) 아무런 위협 없이 장애인이 선거 중 비밀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선거를 대표하고, 사무실을 열며, 정부기관에서 모든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 보호
(iii) 선출자로서 장애인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 그들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의사결정으로 투표하는 데 있어 지원하는 것을 용인함.
(b) 비장애인과 평등하고 차별 없이 장애인이 공적 활동 수행에 효과적이고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다음의 사항을 포함하여 이들의 공적 활동 참여를 장려한다.
(i) 정당의 활동과 행정을 포함한 국가의 공적, 정치적 활동과 연관된 비정부 기구 및 비정부 협회에 참여
(ii) 국제, 국내, 지역적으로 장애인을 대표하는 장애인 단체를 구성하고 참여함.
제30조 문화생활,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과 스포츠 참여
1. 당사국들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장애인이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모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여 장애인을 위한 다음의 사항을 보장하도록 한다.
(a) 모든 접근가능한 형태로 문화적 자원을 향유할 권리
(b) 모든 접근가능한 형태로 TV 프로그램, 영화, 연극 및 기타 문화활동을 향유할 권리
(c) 극장, 박물관, 영화관, 도서관, 관광여행 서비스와 같은 문화 활동 및 관련 서비스를 위한 장소에 대한 접근성과, 국가의 중요한 기념관 및 문화적 명소 등에 대한 접근성을 가능한 한 향유할 권리
2. 당사국들은 모든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여, 자신의 이익뿐만이 아닌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며, 지적인 잠재력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3. 당사국들은 모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여,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문화적 자료 접근에 불합리한 혹은 차별적인 장벽으로 구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비장애인과 평등한 입장에서, 수화 및 청각장애인의 문화를 포함하여 장애인은 특정한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지원받을 자격이 있어야 한다.
5. 당사국들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으로 장애인이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다음의 조치를 수립해야 한다.
(a) 주류 스포츠 활동의 전 영역에서 장애인이 가능한 최대로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증진함.
(b) 장애인의 장애별 특화된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조직, 개발하고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며, 이를 위해 비장애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적절한 지침, 훈련 및 자원의 공급을 보장함.
(c)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및 관광여행 현장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함.
(d) 장애아동이 놀이,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 및 스포츠 활동(학교 시스템 안에서를 포함하여)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함.
(e) 레크리에이션, 관광여행, 여가 및 스포츠 활동 조직에 연관된 것들로부터의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함. |
*이 글은 지난 1월 16일부터 시작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7차 특별위원회에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하고 있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한국추진연대 김동호(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초안위원과 엔지오대표단으로 참석하고 있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고용지원센터 하성준 소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오는 2월 3일 회의가 끝날 때까지 우리나라 대표단의 생생한 현장 소식 브리핑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