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과 친구

최명숙의 햇살담는 일상이야기

2005-09-07     칼럼니스트 최명숙

태풍 "나비"가 일본과 남해안을 폭풍우 속으로 밀어놓고 있는 소식이 뉴스속보로 계속 나오고 있던 퇴근 무렵, 사무실을 나서니 하늘에 떠 있는 각양각색의 구름 모양과 구름의 배경으로 지는 노을이 얼만 가슴을 설레게 하던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와 사진에 담고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층층이 다른 모양의 그림을 펼쳐놓은 듯 멋진 구름이 지는 저녁 해와 하늘, 자신들만의 세계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직립보행을 하면서도 하늘보다는 땅을 보고 사는 일이 많은 내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오늘처럼 노을과 구름이 오묘한 풍경을 자아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 곁에 누가 있는지도 살피는 일도 괜찮은 일이다.

사람들은 오늘처럼 가을바람이 선듯선듯하게 하게 불고 노을이 붉은 날은 조금은 들뜨고 쓸쓸한 기분에 젖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따듯한 커피라도 한 잔 나누고 싶어한다.무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 날씨와 잘 어울리는 레드와인과 같은 사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감사해진다. 나 또한 그런 친구이기를 바라기에 우리는 서로 쓸쓸한 가슴에 따듯한 우정을 기대며 그리워하는 서로가 친구다.

한 친구가 시를 읊듯 했던 말이 기억난다. 가을은 햇볕과 그늘이 공존해서 좋고, 열매와 낙엽 즉 채움과 비움이 함께 해서 좋으며 풍요와 가난이 나눔을 배우게 해서 좋으며 감사와 안타까움이 더불어 있어 좋다고 했다.

친구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다양하다.

첫 번째 친구는 남자보다 더 큰 배포와 여자다운 세심함을 둘 다 갖추고 여장부로 영등포 구청근처에서 전자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주중의 하루를 택하여 자신의 사무실로 좋은 친구들을 불러 다도모임을 갖기도 하고, 명상과 등산 등을 즐기면서 걸한 삶과 맑은 삶을 동시에 사는 친구이다.

두 번째 친구는 집 배경을 등에 지고 중간관리자에 올라있지만 자격지심이 커서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볼 듯이 해서 때때로 얄미워지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친구다.

초등학교친구인 세 번째 친구는 소아과 의사로 어린 환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친구다. 마주치면 "어이 동창"하고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부를 때 그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천진난만하던 표정이 나타나곤 한다.

또 한 친구는 마흔에 찾은 늦깎이 사랑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며 세살 난 아들을 두 사람의 분신인양 키우고, 아직까지도 닭살 돋는 사랑을 간직하면서 산다.

쪽빛하늘 끝에 산그림자가 길고 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든다 해도 사람의 가슴에 찾아드는 기다림처럼 길고 텅 빈 마음처럼 허전하고 서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과 허전함을 구든지 가슴 한 쪽에 안고 살아간다. 기다리는 마음은 애달프지만 돌아올 사람과 희망이 있으니 아름답고, 허전함은 연민과 채움을 기대할 수 있어 애틋하다.

이제 가을햇살에 바람도 따듯해지는 정을 나눌 사람들이 작년보다 더 느는 9월이 될 것이다. 사는 모습이 같은 친구는 한 명도 없지만 이웃을 살피는 마음은 서로 닮아서 얼마있지 않아 자기 방식대로 선한 사랑의 실천들을 하고서 모자라는 부문의 것들을 서로에게 SOS의 손짓을 할 것이다.

올 가을에는 차례로 떠오르는 정 깊은 친구들에게 나의 새시집 한 권 선물로 주고 싶다는 서원을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