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따시고 배불러서 행복인 줄 알았더니
시각2급, 지체1급 배강오 씨의 삶 - ②
“광명학교에는 합주부도 있었고 합창부도 있었는데 저는 합주부에서 트럼펫을 담당했습니다.”
광명학교에서는 기숙사생활을 했다. 학기 중에는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느라고 별 생각이 없었지만 방학이 되면 부모들이 데리러 오는데 그를 데리러 오는 부모는 없었다.
“처음 시설에 갔을 때는 한번 씩 오시더니 몇 년 지나자 더 이상 오시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우연히 두 분 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간이 찾아 왔다.
“내 신세가 너무 서글퍼서 죽고만 싶었습니다.”
부모는 물론이고 일가 친척하는 하나 없는 천애고아였다. 죽고만 싶었고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살아야 했다.
“영광교회를 다녔는데 그 때 멘토가 나타났어요.”
영광교회 주일학교 선생이었는데 경북대학교 물리과 학생이라고 했다. 주일학교 강태영 선생은 광명학교에도 자원봉사자로 와서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강태영 선생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여자 친구도 학교에 같이 왔습니다.”
강태영 선생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그 여자 친구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부모가 없는 제게 강태영 선생과 그 여자 친구는 부모님 같고 친구 같은 선생이었습니다.”
합주부 선생은 그에게 트럼펫을 불게 했다.
“그 악기를 가지고 3년 동안이나 씨름했지요. 돌아온 미소, 밤하늘의 트럼펫, 사랑의 기쁨 같은 곡을 죽도록 연습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좋은 트럼펫을 구입했더니 너무나 잘 불리더란다.
“예전에 학교에서 불던 트럼펫은 너무 고물이었던 게지요.”
광명학교는 시각장애인 학교다. 그도 고등부에서 이료과목을 이수했고 졸업을 하면서 안마사자격증을 받았다.
“처음 경주에서 치료실을 1년 쯤 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하겠습디다.”
손님이 와서 안마를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치료실이 이층이었는데 목발을 짚고 연탄불을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연탄재를 버리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딸랑딸랑 청소차 소리가 들리면 목발을 짚고 연탄재를 담은 바켓츠를 들고 한발 한발 겨우 계단을 내려가면 청소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더 이상 치료실을 할 수가 없더군요.”
지난 날 A재활원에서 알고 지내던 지체장애인이 부산에서 수세미 장사를 한다면서 오라고 했다. 하반신을 고무타이어로 감싸고, 바퀴가 달린 긴 나무판자 위에 엎드려서 앞에는 수세미 빨래집게 고무줄 바늘과 실 같은 일용잡화를 얹어서 시장바닥을 밀고 다니면서 팔았다. 중앙시장에서 물건을 받아서 장사를 하고 밤이면 문현동 어느 공터에 설치 된 컨테이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장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돈을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아침마다 그들을 태우고 시장 입구에 내려주는 차량이 있었다. 돈은 벌었지만 기사 차비 주고 유흥비로 탕진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하루 종일 타이어 같은 검정 고무로 하반신을 묶고 있으니 무릎이 아파서 울고 그리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창피해서 울었다. 그러다가 컨테이너를 설치한 공터 주인이 건축물을 짓는다며 비워달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앵벌이 같은 장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구로 올라갔다.
“대구에서는 지낼 곳도 없었기에 포도나무선교회에 살면서 근처에서 치료실을 차렸습니다.”
선교회에 딸린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살다가 성서주공에 영세민 아파트를 얻어서 이사를 했다.
“맹인신협이 생기면서 참가하게 되어 부산장우신협에서 교육도 받았습니다.”
대구희망신협(이사장 김윤섭)은 1993년에 대구 중구 종로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자립기반 조성을 위해 설립되었다. 희망신협에 근무하면서 같은 시각장애인 김** 씨와 결혼을 했고 딸(1995년생)과 아들(1997년생)을 낳았다.
“그런데 시술소 하는 사람들을 보니 제 월급이 너무 초라했습니다.”
신협을 그만두고 안마시술소를 차렸다. 아내도 안마사이므로 처음에는 아내와 같이 일을 했다. 안마시술소를 하니 돈은 벌었다. 돈을 벌자 못 다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미래대학 사회복지과에 입학했다.
“그렇게 돈도 벌고 대학도 다녔기에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도 잘 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는 초죽음이 되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그동안 벌었던 재산도 다 날리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옛날 일이지만 그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죽지 않으면 살아야 했다. 아이들은 외가에 맡기고 그는 다시 일어섰다. 이제 더 이상 옛날의 그가 아니었다.<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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