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조약은 인류의 마지막 인권조약"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당위성 '뒷받침'
초안 완성으로 조약 제정 속도 빨라질듯

2004-02-16     소장섭 기자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이익섭 공동대표는 지난 워킹그룹에서 초안이 완성됨에 따라 조약 제정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이블뉴스>

[특별인터뷰]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이익섭 공동대표

지난해 장애인계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 문제로 무척 분주했다. 이것은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왜 국내 장애인계를 포함해 세계 장애인계는 권리조약 제정을 위해 몰두하는 것일까? 과연 권리조약이 장애인 개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그리고 권리조약은 언제쯤이나 만들어지는 것일까? 에이블뉴스는 창간 1주년을 맞아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권리조약 워킹그룹 회의에 정부대표로 다녀온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이익섭(52·시각장애1급·한국DPI 회장·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동대표를 만나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왔다.

▲유엔특별위원회 워킹그룹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했다. 조약 제정과 관련해 엔지오와 정부의 파트너십 문제가 강조되고 있는데, 엔지오에서 활동하신 본인이 직접 워킹그룹 정부대표로 참여하시게 된 것은 감회가 클 것 같은데….

“우선 창간 1주년을 축하드린다. 개인적으로 평가했을 때도 그렇고 공히 에이블뉴스가 권리조약과 관련해 기여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 많은 기자들이나 데스크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질문과 관련해 감회라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와 엔지오간의 파트너십이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왔지만, 엔지오에서 정부 대표가 선출된 것은 한국정부 결정권자들의 성숙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엔지오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많은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양자를 높이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권리조약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동참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가 장애문제와 관련해 칭찬받을 수 있는 단초, 내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꾸려냈다는 점에서 장애, 비장애와 정부, 엔지오를 떠나서 높이 평가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역시 DPI가 권리문제를 핵심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에 꼭 참여하고 싶었고, DPI 구성원들 역시도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권리는 장애인 모두가 참여해서 찾아야 될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DPI가 주력을 해서 나름대로 의미를 결실로서 엮어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유엔특별위원회에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초안이 만들어졌다. 초안의 수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굉장히 어려운 얘기인데, 단선적인 평가를 내리기 힘들 것 같다. 뭘 원했느냐가 중요하고, 우리가 원했던 것이 모두가 반영돼야하는지에 대한 평가도 사실 해봐야 된다. 그게 왜 복잡해지냐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회개발적인, 어떻게 보면 당대의 효과를 갈망하는 그런 면이 없지 않았고, 엔지오 차원에서 생각했던 권리조약이라는 타이틀을 떠나서 장애인당사자단체가 희망했던 열망들을 과연 권리조약에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한다.

무엇을 기대했는가, 또 어떻게 원했는가라고 하는 점을 세계무대에서 재조명하는 한번의 스크리닝은 필요했다. 그래서 수준이라고 하면 어떤 기준을 전제로 해서 평가를 해야 하는데 기대에 대한 분석을 일면 가해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평을 한다면, 수준은 미흡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단지 사회개발적인 측면 혹은 즉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축소 내지는 절제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는 엔지오의 희망이 전격적으로 반영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방콕 드래프트와 견주어 볼 때는 그 점에서도 역시 사회개발론적 입장보다는 원칙론적 입장으로 가느라고 많이 축소되고, 절제된 모습으로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면 수준이 평가 절하된 것이냐고 보기에는 어렵다. 사회개발론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는데,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새로운 국면은 인정해야한다.

역시 ‘장애인 권리는 새로운 권리가 아니다. 있는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지 새로운 권리는 없다’는 것이 대전제로 화두가 됐기 때문에 장애인권리를 찾는 점에서 뭔가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일면 인정받을 만한 면도 보인다. 부득이 그로 인해서 사회개발론적이거나 복지적, 당대의 효과를 보려하는 것은 약간 상쇄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마음은 좀더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우리가 제기했던 이동권문제, 자립생활 등이 조약에 반영이 됐다. 그러나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국제사회의 반응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준다면….

“우리나라 정부대표로서 관심을 갖고 추진했던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이동권이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화두가 됐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반영시키려고 방콕에서도 노력을 했고, 연이이서 일관되게 노력을 했다. 그런데 많은 저격수들이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동권의 내용이 장애인 보장구나 기술, 테크놀로지가 핵심이다. 그런 점을 봤을 때 굳이 별도 조항으로 하지 않고, 접근성에 포함을 시키거나 기술향상 부분으로 흡수시킬 수 있다. 별도의 이동권이라고 하는 새로운 권리를 만드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었다.

일종의 논리적인 공격도 받았고, 나름대로 이동권에 대한 조항을 축소하자고 하는 일반적인 흐름에 부딪혔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입장에서는 우리나라가 화두로 갖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했다.

일정 부분 사족이 좀 달렸고, ‘개인의 이동’(Personal mobility)이라고 제목이 좀 바뀌었다. 그 이유는 'Liberty of Movement'라는 '시민정치적 권리조약'(ICCPR)에 들어가는 용어와 혼동되기 때문에 개인(Personal)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면 애매하고, 중복될 수 있으며 중복되면 여기 넣을 필요가 없어진다라는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추진연대 초안위원회에서 논의했던 것에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나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아무 때나 자유롭게 원할 때 움직일 수 있어야한다’는 등의 아이디어를 추가로 넣으면서 살리는데 성공했다.

자립생활 문제는 모델론 때문에 고생을 했다. 자립생활은 권리의 개념이 아니라 기본 권리를 구축하는데 사용한 방법상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모델에 사용된 용어를 권리조약에 적시하기는 어렵다라는 등의 모델론에 부딪혔다. 그래서 일본, 캐나다 등 몇 나라가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이라는 말을 빼고, '독립'(Independence)으로, '독립적으로 사는 것'(Living Independently) 등의 용어로 바뀌었다. 그 사람들은 용어를 순화시켰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희석된 상태로 전환된 것이다.”

▲ 이익섭 공동대표는 장애인권리조약은 국제사회가 만드는 마지막 인권조약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이블뉴스>
▲권리조약 이슈와 함께 장애인당사자주의 이슈가 지난해 크게 일었다. 장애인당사자 단체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장애인당사자주의가 조약 초안에는 어떻게 반영이 됐는가?

“당사자주의라고 하는 적절한 용어는 없지만 내용은 확실하게 반영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전문에 보면 장애인과 직접 관련된 것은 장애인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다른 조항에서도 ‘긴민한 협의’(Close consultation)라는 개념하고, ‘능동적인 참여’(Active involvement)라는 개념이 들어갔다.

이것은 내가 제안했던 것인데, 이게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주의가 적시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위를 보면 장애인 및 장애인당사자단체 이외에도 장애를 위한 단체나 대학, 관련기관도 적시하자는 안이 다른 정부에서 나왔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반대가 있었으며, 나도 반대했다. ‘그것은 안 넣어도 그 사람들을 배척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얘기가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결국 장애인과 장애인당사자단체만 들어갔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당사자주의가 기본 골격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당사자주의라고 하는 용어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한다.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확실하게 들어갔다고 봐야한다.”

▲지난 1년 동안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문제가 국내에서 큰 이슈가 됐다. 그런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문제는 피부에 와 닿은 부분이 큰데, 권리조약은 차별금지법 보다 덜 피부에 와 닿는다는 지적이 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이 장애인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그 말은 옳은 것 같다. 피부에 와 닿는 게 적지 않는 가라는 부분은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 2백여 회원국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나라 각각 장애인 개개인의 피부에 와 닿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쉬운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생각해봐야 되는데, 우리가 뭘 피부에 와 닿는다고 표현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장애인도 복지에 훈련돼 있고, 세뇌돼 있다. ‘피부에 와 닿는다’는 표현자체가 복지혜택이 들어간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제도적으로 금방 바뀌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것은 많이 없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복지 패러다임에서 인권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것인데, 양과 질은 그렇게 변화가 없어도 보는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즉, 장애인의 몫이 복지로 보호되고,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과 인권의 차원에서 보장받는 그러한 몫으로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 개인의 삶의 함수가, 방정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생각해야 된다. 그런 점에서 피부에 와 닿는다는 표현보다는 권리조약은 근본적인 원리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수화방송은 복지방송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20%의 수화방송은 복지수준 20%라고 표현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절대 값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많은가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인권조약이 채택되고, 비준되면 수화, 수어의 사용은 권리수준으로 평가될 것이다. 같은 20%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복지방송의 수준이 방송시간당 20%가 수화통역이 된다, 복지수준이 그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에서부터 24시간 방송 중에서 우리나라 청각장애인들의 권리가 20%가 실현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피부로는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관점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크게 볼 수 있다.

정보 접근이라고 하는 것이 복지부에서나 다른 부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음성프로그램을 보급하고, 복지정책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향후 정보에 대한 접근권리 지표가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하는 것으로 관점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삶속에서의 함수 혹은 그 어떤 가치, 또 사회 전체 속에서 조명해본 장애인의 삶의 목소리 등이 이전에 복지로써 담보된 상황에서 지표화 되는 것이 아니고, 권리지표로 변화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이외에도 솔찮게 변화가 있을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나 사회가 피부에 와 닿는 예산상의 물리적인 변화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관점으로 우리가 좀더 관찰하고 평가하고,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피드백을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과 서로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국내 차별금지법 제정과 권리조약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차별금지법과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이것이 아까 남겨놓은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수준을 이야기했었는데, 사회개발론적으로 보면 위축된 것 같지만 다른 기대에 부닥쳐보면 다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초안은 차별금지의 기본 컨셉을 갖고 있다. 유럽연합의 철학이 많이 반영된 것인데, 예를 들면 다섯 가지 기본원칙에 차별(discrimination), 차별금지(non-discrimination)의 원칙이 선명하게 들어가고, 전문에도 들어가 있다. 차별금지를 기본 바탕으로 깔려고 하는 의지가 간명하면서도 선명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차별금지의 범사회적 정당성 확보에 서로 공감하는 면이 크지 않나, 버팀목 역할을 해주지 않겠나하는 생각에서 봤을 때 차별금지가 외롭고 독특한 제정의 노력이 아니고, 지구촌 전체를 포괄하는 노력의 기본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역시 차별금지법에도 국제조약에도 힘이 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집행과정이나 구제 및 감시 등에 있어서도 좀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조약이 버티고 있으면 사회, 정부나 개인이 이것이 정말 필요했구나 하는 충분한 타당성이나 적법성, 사회적 명령 등을 의식할 수 있다는 면에서 엄청난 관련성을 갖고 있다.

결국은 장애인문제가 새로운 권리가 있는가라는 궁극적으로 질문을 할 때, 새 권리가 있는가라는 것이 고민거리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차별로써 많은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별금지를 양쪽에서 다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장애인문제는 차별금지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올해 두번의 특별위원회 일정이 잡혀있다. 아무래도 조약 제정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기대가 있다. 조약 제정 시기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특별위원회가 두 번 열리는 것은 다른 조약제정 과정보다는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말하고 있다. 2회에 걸쳐서 특별위원회가 잡혀있다는 것은 예산을 많이 투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배경에는 멕시코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국제사회에는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전반적인 의견을 반영했다기보다는 대통령 폭스가 홀로 나름대로 독주를 많이 해서 이번 2번의 스케줄을 잡아낸 것이라는 평가가 들리고 있다.

그래서 전반적인 흐름은 아닐 수 있다. 마치 특별위원회가 두 번 열리니까 많은 사람들이 빨리 하자라는 열화와 같은 목소리를 반영한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두 번은 상당히 특이한 것이지만 그 배경으로 들어가 보면 폭스대통령의 야심찬 노력에 의한 것이지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회의를 하면 걸러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특별위원회에서 협상이 잘 되면 총회로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통상 2~3년 걸릴 것이라는 사람들의 전망이다.

빠를 수 있는 가능성도 이번 워킹그룹을 통해서 많이 보여 졌다. 예를 들면 이런 초안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단히 큰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깨끗하게 초안이 나온 것에 대해 경이롭다고 많은 관계자들이 평가한다.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2번 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웬만큼 의견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유럽연합의 입장이나 몇몇 국가들의 강력한 주장이 절충이 돼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많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지난 워킹그룹에서 나타난 세계적인 엔지오들의 분위기는 어땠나?

"워킹그룹에서 나타난 양상들은 몇 가지 축으로 구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엔지오와 정부의 대립이 하나의 축을 형성하는데, 이번 워킹그룹에서 엔지오들은 사활을 건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

이번 회의 내내 ‘참여하는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엔지오가 발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래서 엔지오의 발언들에 대해서 경청해주고, 많은 격려를 부탁한다’는 등의 발언들이 여러 번 나왔다.

앞으로 남은 특별위원회는 정부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절실하게 느끼고, 마지막 절대 절명의 시기로 잡았기 때문에 엔지오들의 발언 수위가 제법 강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비해서 정부가 현실론을 많이 내놓았다. 왜냐면 특별위원회에 가기 전에 웬만큼 각 국가의 입장들이 반영이 돼야하기 때문이었다.

방콕회의에서처럼 ‘그 얘기 좋다’라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듣기는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못한다’라는 식의 얘기가 막 나왔다. 이런 발언들 때문에 엔지오의 발언들이 불붙지 않고 상당히 상쇄되는, 기가 꺾이는 현상이 많았다. 즉, 엔지오의 함포사격이 연이어서 촉발되지 않고, 강력하기는 했지만 연쇄적으로 연결되기는 어려웠다고 본다.

정부대표로 민간이 나간 나라는 독일, 태국 정도가 눈에 띄고, 다른 나라도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민간을 정부대표로 했다는 것에 대해서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높게 평가했다. 그외에 엔지오들도 나름대로 많이 와서 참석을 했지만, 이번에는 참석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촐한 모습이었다.

다른 나라와는 차별화되는 점은 우리나라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추진연대를 구성해서 참여했다는 점이다.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이뤄지는 독특한 나라로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다. 조약은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난 4일 이익섭 공동대표가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초안위원회에서 지난 워킹그룹의 결과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우리나라도 1년 동안 많은 활동을 벌였는데, 부족했던 점은 무엇이며 앞으로 한 해 동안 어떻게 나가야한고 보나?

"권리조약을 만드는데 고려해야할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국제법에서 사용되는 용어에 대해 몰라서 우리가 헤매는 것 같다. 그것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번 초안에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이라는 말이 빠져버렸다. 이 용어는 관련 분야에서 핵심적인 용어 중에 하나인데, 이게 역시 국제사회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용어였다. 민족 자결권, 국가 자결권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조약에 사용될 수가 없다고 모든 사람들이 바라봤다. 그래서 ‘freedom to choose’라든지 'freedom to choose on choice'라는 식으로 나갔다.

그 다음에 국제사회에서는 기존의 6대 인권법과의 관련성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동의 자유(Liberty of Movement)라는 것은 ‘시민정치적 권리에 대한 조약’(ICCPR)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혼돈된다라는 등의 반응이었다. 국제조약을 만들 때 장애인의 새로운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도 유의해야한다. 역시 국제조약을 만들 때 필요한 틀로 개념화를 잘 해내는 것이 과제인 것 같다.

일단 보고대회를 통해서 그동안 진행됐던 것을 잘 보고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추진연대 안을 이번 회의에 제출하지 못했는데 잘 다듬어서 특별위원회에 제출해야한다. 이미 30개 정도 초안이 올라와 있는데, 이후에 내도 특별위원회에서 고려가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권리조약의 의미를 짚어 달라.

"누차 이런 기회를 통해 이야기하지만, 장애인조약은 국제기구가 추진하는 마지막 인권조약이라는 것이다. 21세기에도 마지막 인권조약을 체결해야 되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국제사회가 반성해야 될 문제이다. 인권은 기본권인데, 인간의 권리인데 이 권리가 아직도 조약을 통해서 보호돼야한다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권리조약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 권리조약으로서 장애인조약이 그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는 인간의 많은 문제를 이해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문제가 마지막으로 생각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되게 크다.

장애인은 우리 국민 중의 3%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마지막 인간의 문제를 조명하는 매우 큰 화두라는 점을 생각해봐야한다. 장애인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장애인문제를 통해서 인간의 본질이 뭔지를 다시 한번 조명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문제는 단순히 많은 숙제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그동안 일을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사회의 현실을 반성한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고, 이를 통해서 이뤄야할 방향의 재정립이라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면에서 장애인문제는 21세기 인류의 문제라고 본다. 이것은 어떤 구석에 있는 문제를 마지막으로 들춰내서 해결해야할 과제로 봐서는 안 되고, 아직도 우리가 해결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국제적 반성과 더불어 향후 새로운 세기를 여는 관점 정리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화두로 봐야한다. 장애인권리조약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