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장애인권리조약 초안 채택후 폐막

오는 5월 개최되는 특별위원회에 제출 예정
‘자립생활’ ‘이동권’ 조항 변형돼 조문 반영

2004-01-19     뉴욕/김동호 초안위원
지난 5일부터 열린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워킹그룹 실무회의가 오는 5월 특별위원회에 제출할 초안을 채택하고, 폐막됐다. 사진은 유엔 본부의 전경.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유엔 워킹그룹 리포트-⑤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보장과 증진을 위한 광범위한 포괄적 조약(Comprehensive and Integr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하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실무그룹회의가 10일간의 열띤 토론을 마치고 오는 5월 개최될 특별위원회(Ad Hoc Committee)에 제출할 실무그룹의 초안(Draft)을 채택하면서 폐막됐다.

실무그룹의 최종 초안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전문(Preamble)

1장 목적

2장 일반원리

3장 정의

4장 일반의무

5장 장애인에 대한 적극적 태도의 증진

6장 통계와 자료수집

7장 평등과 차별금지

8장 생명에 대한 권리

9장 장애인으로서 법 앞에 평등 인정

10장 개인의 자유와 안전

11장 고문, 학대, 비인간적 취급과 처벌로부터의 자유

12장 폭력과 비난으로부터의 자유

13장 주장과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의 자유

14장 사생활, 가정, 가족의 보호와 결혼의 권리

15장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에 통합되기

16장 장애아동

17장 교육

18장 정치적 그리고 공공의 생활에의 참여

19장 접근성

20장 개인의 이동성

21장 건강과 재활의 권리

22장 일할 권리

23장 사회보장과 적절한 수준의 생활

24장 문화생활, 레크리에이션, 여가생활, 스포츠에의 참여

25장 감시(모니터링)

자립생활 취지, 초안에 반영

실무그룹 초안에는 이번 회의에서 한국이 제안하고 주장했던 몇 가지의 내용이 반영 됐는데, 우선, 전문(Preamble) 중 '장애인의 자율과 선택'에 관한 조항에 장애인의 '자립(independence)'이 추가되었다. 당초에 우리나라가 제안한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 그대로 인정되지는 못했으나 최종검토과정에서 그 취지는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조항에는 '자율(Autonomy)'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을 대치한 것으로, 자기결정이라는 표현이 이미 국가단위의 결정권한을 의미하는 외교문서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외교문서에 혼동을 줄 수 있는 용어는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고배를 마셨다.

15장 '자립적 생활(Living independently)과 지역사회에 통합되기'에서는,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 특별한 서비스모델일 수 있다는 주장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의 의미를 가져 가족공동체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 밀려 역시 변형되어 수용되었다. 그러나, '활동보조(personal assistance)' 지원은 받아들여져 조문에 포함됐다.

이동권 기본철학 반영

이동권은 20장에 '개인의 이동성(Personal Mobility)'으로 제목이 수정되었는데, '장애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법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의 권리'라는 표현이 들어가, 한국이 제시한 이동권의 기본철학을 담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활동성과에 대해 이익섭 한국대표는, "한국의 여러 가지 제안과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 한국으로서는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인 정보수집과 사전준비가 앞으로 더욱 필요하다. 이번 회의에 각국의 생각과 입장을 알 수 있게 되어 다음의 특별위원회를 대비하는 데 값진 경험을 하였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국제협력 조항 ‘뜨거운 감자’

한편, 마지막 날 회의는 아침부터 '국제협력(International Cooperation)'이라는 주제를 놓고 EU와 저개발국가가 신경전을 벌여 막판 긴장감을 높였다. 전문에 국제협력에 대한 내용이 본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각주로 표시되자,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대표가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자 EU의 수장인 아일랜드는 여기에 맞받아치면서 이번 회의 초반부터 보였던 태도에서 한 치의 변함도 없이 국제협력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상호간 공방은 마지막 날 산적해 있는 의안의 진행에 차질을 빚게까지 하였다. 결국 국제협력이 전문의 본문에 실리는 대신 '국제협력이 장애인권리조약에서 다뤄지는 것은 부적절하고, 만일 다뤄지더라도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일부 국가의 주장이 있었다'는 내용의 각주가 달리게 되었다. 결과는 역전되었으나, 전문 속의 국제협력은 원칙적이 언급만 되었을 뿐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표시해야 하는 조항을 결국 논쟁 끝에 만들어내지 못해, 특별위원회에서의 다시 논란이 재현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무그룹 초안의 각주(footnote)가 너무 많은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108개에 이르는 이번 초안의 각주는, 조항에 이견이 있고 따라서 차후 특별위원회에서 다시 다뤄져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 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많은 조항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논란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초안에 각주가 너무 많다고 한 목소리로 불만을 얘기했으나, 이면으로는 자신들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확정되지 못한 채 머물고 만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였다. 실무그룹회의가 합의나 표결방식에 의한 결정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든 만족하는 결론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엔지오 대표간 협력과 전략 부족

이번 회의는 국가간 이해관계의 일단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아직은 그 전모가 들어났다고 할 수 없다. 국가의 책임과 강제적 의무부분은 가장 예민하면서도 심각한 대치의 지점으로 이제 조약안을 만들어 가야 할 특별위원회에서는 더욱 심한 대립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 지점의 해결사 역할을 국제 NGO 조직이 해야 하는데, 12개의 공식적인 자격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의견조정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번 실무그룹회의에서 NGO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이익섭 대표는, "NGO가 첫 주의 부진을 씻고 주도적이 분위기를 만들어 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논의의 주도는 EU, 캐나다, 중국 등이 했고, NGO는 대응력이 약했고 산발적이었다. 결국 초안도 차별금지모델의 기조는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나 개발모델은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고 말았다"고 말하고, "정부와 선진국은 같은 생각과 입장에 설수 있는 공통의 부분이 매우 많았다. 그에 비해 NGO들은 장애영역별 욕구를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영역간 협력을 통한 조약안 전체의 방향을 담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에 그 이유가 있다"고 평했다. NGO는 선진국이나 정부그룹이 보일 저항을 염두 해 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NGO간 협력과 전략이 부족했던 것이다.

세계 장애인 문제의 현주소

유엔본부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현지 전문가들은 앞으로 조약제정이 최소한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만큼 국제조약은 난산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는 그러한 장정의 한 과정이므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익섭 대표는 "실무그룹회의가 여러 가지 문제와 한계를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장애인문제와 조약에 대한 논의를 한층 성숙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행동계획 등 강제성을 담지 못한 그간의 국제적인 논의와는 다르게, 조약을 전제로 논의의 현장은 인류가 안고 있는 장애와 장애인 문제, 그리고 그에 관련된 갖가지 얽힌 난제들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게 된다. 정부, NGO, 선진국, 개발도상국 등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장애인문제를 전 세계가 고민하게 되는 이번 조약은 그 결과여부에 상관없이 장애인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을 한층 높여가게 될 것이고, 이는 각 국가별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정부대표간 협상테이블인 특별위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특별위원회는 오는 5월 24일부터 6월4일까지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한국 정부도 그에 대비한 본격적인 준비과정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