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니 남편보다 우렁이 각시 '큰엄마'

2011-04-28     기고/배태희

“영희 엄마! 걱정하지 말고, 맘 푹 놓고, 공부 열심히 하고 오세요. 영희가 땡 깡 안 피우고, 생각보다 잘 하고 있어요.”

2008년 여름 미국으로 날아온 이 한통의 문자 메시지가 우여곡절 끝에 영어교사 미국연수에 참가했지만 한국에 두고 온 아이로 인해 노심초사해 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내게, 큰 안도를 주었었고, 대변을 가리지 못하는 발달장애 1급 아이를 그 무더운 여름 내내 맡겨야 했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었었다.

우리 아이들이 “큰엄마”라고 부르는 우리 집 우렁이 각시 도우미 선생님은 가까운 곳에 사시는 아이들의 진짜 큰 엄마 보다도, 그리고 아이들의 친 이모보다도 나의 친정엄마 보다도 더 혈육 이고 가족인 진짜 우리들의 큰 엄마 (Great Mother) 이다.

발달장애 1급인 우리 아들은 올해 16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변을 가리지 못하며, 항 이뇨제를 먹이기 전 까진 거의 이틀에 한 번 씩 방이 흥건할 정도로 이불에 지도를 그리곤 했다.

키가 나보다 더 큰 사춘기의 아이인지라, 한번 씩 사고를 칠 때마다 나는 그 냄새를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출근준비로 바쁜 나를 대신하여, 아이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학교에 보내주신다.

전쟁터 같은 집을 탈출하듯이 벗어나 출근하여, 하루 종일 학교에서 시달리다가, 또 다른 일터인 가정으로 돌아가면, 정말 신데렐라의 요정 할머니가 요술을 부린 것처럼, 우리의 우렁이 각시인 우리들의 큰 엄마가 부리는 "비비디 바비디 부" 의 마법을 난 날마다 감동과 함께 온몸으로 체험한다.

요즘 들어 우리 아들은 부쩍 나와 큰 엄마를 힘들게 한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더 폭력적이고, 학교의 등교 버스를 타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고,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주저앉아, 버려서 큰 엄마의 몸과 마음을 아침부터 진이 다 빠지게 한다.

버스를 놓칠 까봐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우리의 우렁이 각시 큰 엄마는, 그런 날 시집가서 고생하는 친정 동생 마냥 더 안타까워하며, 잘 달래서 보낸다며 걱정 말고 출근하라고, 등을 떠다민다. 이런 큰 엄마의 마음이 통하지 않는지, 영희는 큰 엄마를 밀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고, 때리기 까지 한다.

분명히 직업엔 귀천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피하는 삼 디 업 종 도 있다. 이 활동 보조 도우미 일도 그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보수가 많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우리의 우렁이 각시 큰 엄마도, 아주 훌륭하게 장성한 아들 과 딸을 둔 아주 다복한 한 가정의 안주인이시며,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줌마이다.

크게 실수한 우리 아들의 이불과 속옷을 보면, 엄마인 나도 가끔씩은 욕지기가 나서 외면하고 싶은데, 큰 엄마는 냄새를 풍기고, 팬티에 변을 매단 채 큰 엄마의 손길을 피하고 씻지 않으려 자신을 미는 영희를 더 마음 아파한다.

우리 아이 영희는 참 복이 많은 아이다. 언제나 자기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둘이나 있으니...

그 입장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심폐소생술로 정신없는 바쁜 데, 팔에 맞고 있는 수액이 다 떨어져 간다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사람은 모두 남의 상처를 아롱 곳 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나에게 주어진 이 인생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느껴지고, 항상 소외된 계층이라는 피해 의식에 젖어 있다. 매일 아침마다 지옥 같은, 내가 치루는 전쟁을 대신 치뤄주는 우리의 우렁이 각시 큰 엄마의 육체적인 봉사와 희생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내 입장을 이해해주고, 그리고 영희와 같은 장애우를 단순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래서 관심조차도 가지지 않았던 범주에서, 이제는 그 내면과 아픔까지 이해하려 하는 우리 큰 엄마의 정신적인 배려와 사랑이 더 고맙고, 감사하다.

하루 3시간 씩, 축복 받은 한 달 60시간의 마법의 시간! 많다면 많은 시간이고, 적다면 적은 시간이다. 만약 내가 반대로 활동 보조 도우미 활동을 해야 된다면, 옛 말에도 있듯이“밭에 가서 김을 맬 것이냐, 아니면 아이를 볼 것이냐”, 두 가지 중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난 기꺼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즉 활동 보조 도우미 활동 대신 다른 일을 택할 것이다. 영원한 어린아이인 발달 장애 아동을, 그것도 덩치가 산만한 남자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경제적인 혜택이 크다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마음이 없으면, 배려의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 할 것 같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방학을 했지만 보충 수업 때문에 학교에 출근을 해야 하는 날 위해, 겨울의 추위와 바람을 헤치며, 로봇 태권브이처럼, 날이면 날마다 봄 햇살 같은 따뜻한 미소로 우리 집 디지털 도어의 문을 거침없이 열고 들어와서 제일 먼저 아이의 방으로 먼저 향한다.

밤새 잘 잤는지, 안부를 물으면서, 오늘은 추우니까 제일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한다며, 두터운 겨울 외투를, 나는 어디에 두었었는지도 모르는 그 외투를 찾아와 입혀주며,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신다.

봄이 노란색으로 그리고 핑크빛으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장애인의 엄마로서 온통 잿빛과 검정색으로 메말라 있었던 나의 겨울에도 봄이 우리 집 우렁이 각시의 미소와 사랑으로 두꺼운 얼음을 녹이며 오고 있다. 나보다도 영희를 더 많이 알고, 영희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그 노하우를 정확히 알고 있는 그녀! 나의 조력자, 나의 수호천사!

요즘 나의 기도는 그녀의 건강과 그녀와 우리의 인연이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하는 것과 영희로 인해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기대는 연약하지만 넓고 든든한 어깨이며, 나의 통곡의 벽이다. 아주 사소한 고민 에서부터, 세상사의 깊은 시름까지 그녀에게 이리 저리 토해낸다.

그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고통은 반감이 됨을 느낀다. 그런 우리의 우렁이 각시 진짜 큰 엄마(Great Mother)인 그녀에게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얼마나, 그녀의 조력에 그녀가 내 생활 깊숙이 매만지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는지 표현 한 적이 없다. 이 자리를 빌 어 우리의 큰 엄마에게 진정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죄송한 마음이지만 정말 사랑합니다. 큰 어머님, 우리들의 Great Mom!

*이 글은 독자이신 부천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 배태희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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