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2003-11-01     방귀희

아버지 갔지

엄마 갔지

조카 갔지

이제 정말 혼자가 됐어

내가 혼자 있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하지만 생각처럼 무섭진 않아

혼자 있는 시간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전화벨이 울리는 거야

바람 쐬러 나왔는데 오다보니까 우리 집 앞이라나

혼자 있을 나를 걱정해서 온 사람인데

그냥 가라고 할 수가 있어야지

문을 밖에서 잠그고 갔기 때문에

방법이 없는 거야

열쇠를 베란다 창으로 건네주려고 했는데 창이 꽁꽁 닫혀있고

만약 내가 20대 였으면

"그냥 가, 약속도 없이 찾아오면 어떻게"

이랬을텐데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까

그런 허영심이 좀처럼 생기질 않는 거야

엄마가 떠나기 전 막아버린 현관 우유통을 쳐다보면서

엄마 원망만 잔뜩 했지

'아니 그걸 왜 막어'

아무 도움도 안되면서 부지런히 따라다니는 노루가

얄미워서 비키라고 한대 때렸더니만 나한테 눈을 홀기는 거야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말했지

"문은 어떻게 여는 거야"

"도어 가운데 나와있는 것을 돌리시면 돼요"

"알았어 한번 해볼께"

난 있는대로 손을 뻗어 가운데 돌출해있는 것을 돌렸지

찰그락 하는 소리가 나는 거야

금고 털이범이 금고 문을 여는 느낌이였어

문이 열리는 순간 난 황홀했어

내가 문을 열었다는

내가 해냈다는

그렇게 쉬운 걸 난 왜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야

난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열심히 찾고 있어

찾아보니까 많더라구

문을 내손으로 열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 있어

문은 반드시 열린다는….

앞으로 열어야할 문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용기를 내서 시도 할꺼야

그리하여 마침내 굳게 닫힌 문을 열고야 말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