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능력측정검사는 운전면허 차별의 ‘핵’

인권위 시정권고에도 경찰청 면허제 현행 유지
장자모 회원, 운전능력 측정검사 불합리 시연

2003-08-23     안은선 기자
장애인자가운전권 확보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도봉운전면허시험장 장애인운동능력 측정실에서 장애인운전면허시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항의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운전능력 측정검사 왜 폐지돼야 하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며 운전면허제의 개선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운전면허제 개선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자가운전권 확보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대표 안형진·이하 장자모) 회원 10여명은 지난 22일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았다. 현행 운전면허시험제도에서 장애인에게 가장 불합리한 것으로 지적되는 운전능력시험의 문제점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왜 장애인들이 운전능력 측정검사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지 그들을 동행 취재했다.

인권위 권고 불구, 현실은 그대로

지난달 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외형적인 신체상태별 장애정도만으로 판단하고 운전보조장치에 의한 보완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운동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고 밝혔다. 이때 인권위는 경찰청에 운전면허제의 개선을 권고했다.

그러나 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봉운전면허시험장 민원실 노용호 부실장은 “현재 인권위의 권고사항 외에 따로 경찰청에서 지시가 내려온 것이 없다”며 “교통사고로 인해 한 해 동안 1만 명이 사망할 정도로 운전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면허 절차는 그만큼 신중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자모 회원들은 이날 노 부실장에게 “대중교통조차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현실에서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시험제도로 인해 운전면허를 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현실과 맞지 않는 테스트를 굳이 장애인에게만 적용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고 재차 지적했다.

비장애인도 통과하기 힘든 운전능력측정검사

▲ 장자모 김은순(여·28·뇌병변2급)씨가 장애인운동능력측정검사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현재 장애인운동능력측정검사를 보면 자동변속기의 경우 핸들조작, (발)브레이크 조작, 엑셀러레이터 조작, 사이드브레이크 조작 4가지 항목에 대해 측정하며 수동의 경우 수동식브레이크 조작, 수동식 액셀러레이터 조작, 클러치 조작, 기어변속 조작 항목을 추가로 검사한다. 이 측정검사에 모두 합격해야만 학과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특히 측정검사에서 가장 문제가 제기됐던 핸들조작의 경우 4.8kg 무게의 핸들을 2.5초 이내에 580도(오른쪽으로 한바퀴 반정도)를 돌리고 24초간 유지해야만 합격이 가능해 불합격하는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이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테스트의 난이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장자모 회원들은 “운전능력 측정검사가 없어도 면허 취득 능력이 안 되는 장애인들은 코스시험과 주행시험에서 불합격을 하게 될 것”이라며 “면허시험 자체를 볼 수 없도록 가로막는 운전능력 측정검사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측정검사를 할 때 별도의 헤드캡을 착용해 다른 항목을 측정 시에 머리가 움직이는 것도 동시에 체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자모 회원 김성은씨는 “뇌성마비가 몸이 떨리는 건 당연한 건데 운전을 할 때 머리를 흔들면 전면을 못 보기라도 하냐”며 항의했다.

한편 운전능력 측정검사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기 위해 안형진(남·25·뇌병변1급)씨를 비롯한 유기용(여·28·뇌병변1급)씨, 김은순(여·28·뇌병변2급) 이세희(여·23·뇌병변2급)씨 등이 이날 직접 시험에 응시했으나 이세희씨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운전능력 측정검사에 불합격하고 말았다.

실제 2종 보통면허를 갖고 있는 기자 또한 운전측정검사에 응시한 결과 첫 번째 불합격 판정을 받고 두 번째서야 겨우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실제 운전능력하고 장애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운전능력측정검사와의 괴리감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장자모 회원들은 “비장애인들도 통과하기 힘든 운전능력측정검사를 왜 장애인들에게만 적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면허소지 장애인도 측정검사서 탈락

더불어 이러한 운전능력측정검사가 사실상 측정검사기계와 검사담당관의 재량에 따라 각 시험장마다 조금씩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 그 기준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이날 항의방문에 동참하기 위해 경남에서 올라온 박상호(남·33·뇌병변 2급)씨는 2종 보통면허를 소지하고 있지만 다시 테스트에 응시한 결과, 핸들조작 테스트에서 세차례나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운전면허 자격증을 따기 위해 경남지역 8곳의 면허 시험장에 응시를 했으나 이 중 5군데는 겉모습만 보더니 응시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재활의학과 선생님과 동행해 선생님이 직접 뇌병변장애라고 해서 운전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담당관에게 설명한 후에야 제대로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박씨는 “보기에는 장애가 심해 보여도 10년 동안 사고 한 번 난 적이 없다”며 “실제로 운전해보면 아무런 필요도 없는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운전면허 시험제도의 절차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현 운전면허시험의 절차를 보면 응시원서제출→신체검사→운동능력 측정기기에 의한 검사→학과시험→기능시험 순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신체검사 후 운전능력 측정검사를 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신체검사를 통과했더라도 운전능력측정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신체검사비용(5,000원)을 날려야 하는 실정이다.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는 연구모임 구성 절실

▲ 장자모 대표안형진 대표는 `장애인당사자가 참여하는 장애인운전면허연구 모임을 만들것`을 요구했다. <에이블뉴스>
이 날 도봉운전면허시험장 조희련 시험장장은 장자모 회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측정검사가 불합리한 건 알고 있지만 우리 쪽에서 임의대로 바꿀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응시자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도록 노력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조 시험장장은 “전에 국립재활원에서 용역이 나왔을 때도 이러한 불편한 점에 얘길 했고, 현재 경찰청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니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장자모에서 지난 5월부터 경찰청 연구모임에 장애인 유형별로 장애인 당사자를 참여시켜달라 요구했지만 경찰청은 아무런 답변도 없다”며 “즉각 경찰청 연구 모임을 해체하고 장애인 당사자 참여하는 모임을 새로 만들어 다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찰청이 국립재활원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의뢰해 지난 4월 중순부터 진행한 장애인운전면허 제도개선에 관한 관련 연구가 오는 10월 마무리되며 11월 관련 공청회를 통해 본격적인 법개정에 착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