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는 장애인 차별을 제대로 아는가

국민은행 혜화동지점 급경사로 진정 결과 논란
위험한 경사로 두고 '별도 구제조치 필요없다'

2010-02-18     박종태 기자
국민은행 혜화동지점 앞에 설치된 급경사로. 손잡이는 한 곳밖에 없고, 직원을 부르는 벨을 고장이 나 있었다. ⓒ박종태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차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장애인들이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운 경사로를 두고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장애인인권활동가 이경호씨는 지난 2008년 11월 5일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국민은행 혜화동지점 입구에 경사가 너무 가파르고 손잡이도 없는 장애인들에게 위험한 경사로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1월 15일 진정을 제기한지 1년 2개월 만에 나온 결정은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에 산정해 심의·의결한 결과 기각 처리됐다는 것.

"이 결정은 피진정인인 명륜프라자 및 그 시설물을 임차한 국민은행 혜화동지점 모두가 문제된 급경사로를 물리적으로 변경할 법적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 국민은행 혜화동지점이 2010년 1월 31일까지 당해 급경사로에 안전을 위해 난간을 설치하고 장애인 고객이 벨을 누르면 은행 직원이 나와서 장애인의 급경사로 이용을 도와주도록 벨과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의 편의조치를 취하겠다고 확약해옴에 따라 별도의 구제 조치가 필요하지 아니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이 결정의 요지는 해당 건물이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측이 개선책을 내놓아 구제조치가 필요없다는 점이었다.

이 결정을 전해들은 진정인 이씨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제대로 조사를 한 것이 맞는지 의구심을 표하며 에이블뉴스측에 취재를 요청해왔다.

지난 17일 취재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보니 문제의 경사로는 은행 출입구 앞에 매우 짧고 가파르게 설치돼 있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휠체어와 함께 뒤로 넘어져 다칠 우려가 매우 높은 실정이었다.

손잡이를 설치했지만 한쪽에만 설치돼 있었고,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벨은 벌써 고장이 나 있어 작동이 되지 않았다.

명륜플라자 관리소장도 해당 경사로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3월에 은행 출입구 옆 한쪽 계단을 철거하고 경사로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에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번 결정을 두고 진정인 이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감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번 사안을 인권적 관점이 아니라 행정적 관점에서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번 사안은 헌법에 의한 평등권 침해라고 볼 수 있고,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도 저촉되는 것인데도 인권위는 법률적 근거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면서 "인권이라는 잣대를 매우 작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취재과정에서 경사로 설치를 약속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씨는 "인권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해결됐을 문제인데, 언론과 시민이 나서서 인권위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혜화동지점 건물주측은 3월에 계단 옆에 새롭게 경사로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종태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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