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깨달음

2003-07-26     방귀희

참 이상하지

처음엔 죽을 듯이 괴로웠는데

죽지도 않았을 뿐더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렇게 살고 있잖아

엄마가 없으면 못살줄 알았는데

내일은 푸른 하늘이 kbs 제1라디오에서 빠지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길들여진다는 것, 참 무서운 거야

불행에 적응하는 거

그게 불행 이란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하잖아

그런데도 막상 불행이 닥치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들이지

이 정도만 된 것도 다행 이라고 하면서

위로까지 한다구

엄마가 간 것도 요즘은 이렇게 위로하지

만약 목숨을 구했다 해도 누워서 똥 오줌 받아내야 할텐데

엄마 간병을 내가 할 수 없는 처지 여서

엄마나 나나 서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험한 꼴 안보일려고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나보다 하고 말야

난 요즘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늙는 거 라는 사실을

장애는 아무 것도 아냐

늙는 건 죽어가고 있는 거거든

늙었다고 자식들한테 구박받고

사회에서 폐기 처분되고

정말 슬픈 일이야

사람들은 모두 늙어가고 있는데

그걸 몰라

우리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야

너나 나나 마지막 모습은 똑같은데

무슨 잘난 척인지 모르겠어

지나가는 할머니만 봐도 눈물이 나

엄마가 보고 싶어서 라기보다

인간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슬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