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치료 비급여화 논란,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
진료 이상과 부실 논란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 지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아동발달센터 운영과 언어치료를 둘러싼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보험업계 조사에 따르면 의원급 아동발달센터 10여 곳 중 최근 3년간 건강보험청구를 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고, 한 국회의원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보험에는 1만원만 청구하고 환자에게는 24만원을 요구하는 식으로 과도한 비급여 치료비를 챙겨왔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부의 감독이 부실하다는 증거다. 보건복지부는 실태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자칫 언어치료 자체를 계속 비급여로 유지하자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가 나온다.
언어치료를 받는 발달지연 아동과 그 보호자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언어치료는 길게는 몇 년간 지속되며, 치료비는 대부분 가족이 부담한다. 실제로 한 4세 아이는 언어치료·놀이치료·감각 치료 등을 주 16회까지 받으며 최대 월 500만원의 치료비를 감당해야 했다.
맞벌이 부부의 수입 중 80~90%가 아이 치료에 쓰였고, 부모는 “발달지연 아이들을 치료하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언어치료 12회를 보험 청구 가능한 병원과 사설센터에서 병행하던 중, 보험사가 지급을 중단해 매월 200만원 이상의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게 된 가정도 있다.
보호자는 “심한 정도 자폐 수준이던 아이가 느린 학습자로 개선된 것을 보면 치료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 바우처로 지원받는 금액은 고작 월 20~30만 원 수준에 그쳐, 대부분의 비용은 여전히 가계 부담으로 남는다.
제한된 접근성과 보험 급여의 사각지대
이처럼 심각한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전체 필요 아동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연구원 빅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생 약 41만 명 중 약 20%인 8만 명이 조기 치료가 필요했지만, 정밀평가를 받은 아동은 24.7%, 실제로 중재 치료까지 받은 아동은 단 7.9%에 불과했다.
그나마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발달장애 진단이 내려지면 민간 실손보험은 이를 보험금 지급 제외 사유로 삼는다.
조기 개입이 필요한 아동의 절반가량이 보험 혜택에서 배제되는 구조다. 결국 보호자들은 치료비를 전부 감당해야 하고, 많은 가정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최소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다.
정부는 발달재활서비스, 우리아이심리지원서비스 등 다양한 바우처지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소득 기준과 연령 제한이 있어 지원 사각지대가 넓다.
지원 금액 또한 치료 실비에 턱없이 부족해 보호자들이 ‘2회 치료받고 끝나는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다. 치료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는 부족하다.
전문가와 장애계의 요구
전문가들과 장애인단체는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언어치료의 건강보험 급여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발달 전문 센터장은 “지금 급여화하지 않으면 나중에 치를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기에 집중치료하면 나아질 수 있는 발달 지연 아동들이, 비용 때문에 치료를 놓쳐 향후 중증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애아동 부모 단체도 “언어치료는 단순한 사적 치료가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할 권리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언어는 단순히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표현권·교육권·참여권과 직결된 기본권이다. 이런 치료가 시장 논리에 맡겨져 접근이 제한된다면, 이는 곧 평등권과 건강권의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부가 ‘필요는 인정하지만 지원은 제한한다’는 입장을 넘어, 언어치료를 공공재로 전환할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1~2회 이상의 언어·작업·감각통합 치료가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지정되어야 하며, 이후 바우처제도는 보완적 수단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모두를 위한 해결방향: 언어치료의 ‘탈상품화’ 필요
언어장애인은 조금만 지원이 늦어져도 평생 기회를 놓칠 수 있는 민감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보건당국이 접근성을 낮추는 정책을 내놓는다면, 치료가 필요했던 이들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금처럼 언어치료가 민간 시장에 맡겨진 비급여 서비스로 남아있는 한, 치료의 지속 여부는 개인의 경제력에 좌우되고, 치료받을 권리는 사실상 ‘상품’처럼 거래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바로 ‘장애인의 재활과 치료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 것’, 즉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관점이다.
탈상품화란 복지국가 논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개인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서비스—의료, 교육, 주거 등이 시장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칙이다.
장애인의 재활치료 역시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므로, 개인의 구매력에 따라 치료받을 권리가 결정되어선 안 된다.
언어치료는 더 이상 ‘사적인 선택’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간주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장애인의 의사소통권, 교육권, 사회참여권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며,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의 일부다.
적기에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발달 기회를 잃는 아이, 사회적 고립 속에 놓인 성인 언어장애인의 현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정부는 이제 언어치료를 단순히 비용 효율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존엄성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
언어치료를 포함한 재활서비스의 건강보험 급여화는 단지 의료 정책이 아니라, 사회가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품을 것인지에 대한 가치 선택이다. 공공성이 회복된 치료 체계야말로 모든 언어장애인이 차별 없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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