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미와 떠나는 무장애 여행지 ‘파도와 바람이 빚은 길, 삼척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
휠체어로 떠나는 동해안
바람의 계절, 동해 해안이 들려주는 이야기
【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11월의 문턱을 넘자, 바다는 한층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름의 푸른 격정은 지워지고, 청회색의 고요만이 수평선을 가득 채웠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에 자리한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은 그 고요함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해안길이다.
길이는 약 660미터. 한때 어부들이 다니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무장애 데크길로 새롭게 정비되어 있었다. 촛대처럼 우뚝 솟은 바위, 용이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바다, 그리고 수천만 년 동안 바람과 파도가 함께 빚어낸 자연의 조형물들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의 문턱에서 이 길은 ‘살아 있는 바다의 숨’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들려주고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는 입구
해안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면 반짝이는 파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입구 왼편, 작은 전망대는 생각보다 경사가 있었지만, 누군가 휠체어를 살짝 잡아준다면 천천히 오를 수 있는 정도였다. 전망대 정상에 닿는 순간, 시야가 환하게 열렸다. 탁 트인 동해가 수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었고 발아래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발끝을 간질이듯 전해졌다. 그 풍경 앞에서 문득 생각했다.
“아, 이곳이 왜 ‘바람의 길’이라고 불리는지 알겠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공기는 맑고 투명했다. 도시에서 잊고 살던 ‘깊게 닦인 공기’가 이곳에서 비로소 살아 있었다..
바람과 파도가 만든 프레임, 파란 용 포토존
길을 조금 더 걸으면, 데크 위로 독특한 모양의 공간이 나타난다. 파란 용 포토존 광장이다. 나무 데크 바닥에는 파도의 곡선을 따라 파낸 듯한 푸른 용의 형상이 길게 누워 있다. 포토존 뒤로는 바다와 하늘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고, 날씨가 맑을수록 사진은 더 선명해진다.
그곳에 서 있으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파도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마치 용이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기 직전,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파란 하늘, 물결, 그리고 용의 실루엣이 겹쳐진 한 장의 사진은 이 길의 첫 인상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만들어 주었다.
바다가 품은 전설, ‘용이 잠든 자리’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에는 바람만큼 오래된 전설이 남아 있다. 옛날, 가난한 어부가 꿈에서 흰 수염의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노인은 어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은 뱀을 초곡리로 가져가, 용의 제사를 지내라.”
어부는 그 말을 따라 제사를 올렸고, 그 뒤로 풍어가 이어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다를 ‘용이 잠든 자리’라 부르며 오랫동안 신성하게 여겨왔다. 실제로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파도 소리와 바람의 음색이 유난히 깊게 울려 퍼지는 구간이 있다. 눈앞에는 단단한 바위와 출렁이는 물결뿐이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기도와 감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전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 바다의 표정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어 주었다.
두 개의 암석이 한 벽에서 만나는 곳
파란 용 포토존을 지나 조금 더 가다 보면 오른편 절벽에 색이 미묘하게 다른 암석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냥 색이 다른 바위인가?” 싶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한쪽은 짙은 회색빛의 화성암, 다른 한쪽은 옅은 갈색빛의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설명판에 따르면, 먼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변성암이었고, 그 틈 사이로 치고 올라온 마그마가 솟아올라 식으며 오늘날의 화성암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지질의 시간이 한 암벽 안에서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말 그대로 수천만 년의 시간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순간이었다. 파도 소리는 지금도 이 오래된 암석의 이야기를 조용히 이어주고 있었다.
바다와 공중 사이에 서다 -출렁다리
조금 더 걸으면 이 길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지 않지만, 바다 바로 위에 놓인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삼척의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 발을 올렸을 땐 생각보다 단단하게 느껴지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미세한 흔들림이 몸으로 전해진다.
그 진동이 바람과 파도의 리듬처럼 느껴졌다. 다리 중간에는 유리바닥 구간도 있다. 유리가 약간 불투명해서 파도가 또렷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그 위에 서 있으면 발아래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전해진다.
눈앞에는 푸른 바다와 절벽이 이어지고, 몸은 잠시 하늘과 바다 사이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 출렁다리 한가운데는 ‘길’과 ‘풍경’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이었다.
바위 위의 피어난 생명
다리를 지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 틈을 뚫고 솟아 오른 소나무들이 시선을 끈다.
뿌리는 바위 사이 깊숙이 스며 있고, 그 사이에 빗물과 바람이 가져온 흙 위헤서 묵묵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나무뿐만 아니라 해국, 갯메꽃, 바위채송화, 담쟁이 등 작지만 강인한 생명들이 바위 곳곳에 자리해 있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도 꿋꿋한 색을 지켜내는 그 작은 꽃들은 초곡의 바다를 한층 더 생명력 있게 만들어 준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기서도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자연의 말 없는 가르침이 조용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6천 년의 시간을 버텨온 촛대바위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의 상징은 역시 촛대바위다. 광장 끝자락에 서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촛대바위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그저 길쭉한 바위처럼 느껴졌는데 눈앞에서 마주하니 전혀 달랐다. 누군가 오래 기도하듯 묵묵히 서 있는 형상. 파도는 쉼 없이 그 몸을 때리고 하얀 포말을 뿜어 올리지만 바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촛대바위는 무려 6천 년 동안 거센 파도와 바람에 깎이며 지금의 모양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 버텨온 것만이 가진 힘’이 느껴졌다. 자연이 들려주는 오래된 노래가 잔잔히 귓가에 머무는 듯했다.
거북바위 –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아가는 형상
촛대바위에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커다란 암벽 위에 거북 한 마리의 형상이 보인다. 처음엔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사진 속 형상을 떠올리며 보면 금세 거북이 윤곽이 또렷해진다. 바다를 향해 천천히 기어가는 듯한 모습. 수천 년 파도에 깎이고 쌓이면서 생긴 자연의 조각이다.
사람들은 이 거북바위를 장수와 복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길은 이 지점에서 막혀 돌아서야 하지만 돌아서 나오는 길의 발걸음은 묵직한 여운을 안고 있었다. “이곳의 바위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시간과 바람이 만든 생명체 같다.” 그 생각이 끝까지 마음에 남았다.
바람과 닮아가는 마음
짧다면 짧은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나는 발아래로 부서지는 파도와 바람 소리를 온몸으로 들었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서 있는 촛대바위처럼 나도 내 자리에서 너무 쉽게 흔들리지 말자,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와 함께 ‘느끼는 길’이다. 날씨가 허락하는 날, 이 길 위를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거닐어 보길 바란다. 누구든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바람과 조금 더 닮아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장애 여행을 위한 접근성 정보
데크길: 전 구간 나무 데크로 연결되어 있으며, 휠체어 이동이 자연스럽고 안전함
경사도: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이동 가능
휴식 공간: 중간중간 쉼터·벤치·전망 공간이 있어 체력에 맞춰 쉬어가기 용이
장애인 화장실: 입구에 장애인 화장실 마련
장애인 주차장: 입구 인근에 전용 주차 구역 제공
포토 포인트: 촛대바위·거북바위·파란용 포토존 등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사진 명소 다수
이동 편의: 데크 폭이 여유 있어 회전 및 정차에 무리 없음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 가는 길
대중교통 이동
서울역 → 동해역 (KTX) 약 2시간 40분
동해역 →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 강원 통합 장애인 콜택시 이용
전화: ☎ 1577-2014 (사전 등록 후 이용 가능)
기본 정보
주소: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길 140
운영시간: 09:00~18:00 (동절기에는 단축 운영 가능)
입장료: 무료
문의: 삼척시 관광안내 ☎ 033-575-4605
주의 사항: 파도·바람 등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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