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권리를 묻다" 장애인일자리 사업의 그늘과 가능성

2025-11-17     기고/김양희

이맘때면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행정복지센터로 발길을 옮긴다. 바로 내년 장애인일자리 신청을 하기 위해서다.

장애인의 일자리 사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장애인 스스로의 사회 참여의 창구이자, 자존감을 회복하는 통로다. 매년 각 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일자리 사업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현실은 ‘기회 제공’이라는 명분 아래 장애인의 노동권과 복지권을 동시에 제한하고 있다. 장애인일자리 사업의 명암은 여기서 시작된다.

현재 사업은 ‘일반형 일자리’와 ‘참여형(복지형) 일자리’로 구분된다. 일반형은 행정기관, 공공기관 등에서 사무보조, 민원안내, 환경정비, 자료정리 등을 수행하며, 일정 수준의 임금과 근무시간을 보장받는 형태다. 참여형은 주로 중증장애인이나 근로가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복지적 성격의 일자리로, 사회참여 경험과 일상활동의 유지에 중점을 둔다.

이 구분은 장애 정도와 근로 가능성에 맞춘 체계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반형 일자리와 참여형 일자리 모두 구조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반형 일자리의 경우, 겉보기엔 ‘근로 중심형’이지만 고용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부분 1년 단위의 기간제 근로이며, 다음 해 재계약 여부는 예산과 행정 판단에 좌우된다. 경력 단절이 반복되며, 경력 인정 또한 불안정하다. 민간 취업으로 연계된 사례는 극히 드물어, 장애인은 매년 ‘같은 자리를 다시 경쟁해야 하는’ 악순환 속에 놓인다. 또한 일반형 일자리라고 해도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에 그쳐, 복리후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결국 이름만 ‘일반형’일 뿐, 실질적 고용 안정이나 직업 성장의 사다리는 부재한 셈이다.

반면 참여형(복지형) 일자리는 사회참여를 목적으로 하지만, ‘14시간 제한’ 제도라는 구조적 벽에 가로막혀 있다.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법적으로 ‘초단시간 근로자’로 분류되어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 복지를 위한 일자리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법적 근로자로서의 권리조차 제한되는 모순된 상황이다.

이 시간 제한은 복지와 노동의 균형이라는 행정 논리로 설정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장애인의 노동권을 제도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근로지원인 지원사업’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에, 신체적 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의 기회가 복지의 사각지대와 연결되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또한 2년 참여 제한 규정은 장애인일자리 사업의 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명목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퇴출’의 기능에 가깝다. 참여 기간이 끝나면 다른 일자리로의 전환은커녕, 다시 실업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간 취업으로의 연결 통로가 부재한 상황에서, ‘2년 제한’은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보다 오히려 고용 불안정을 심화시킨다.

‘그 일자리만도 어디냐’면 말문이 막히지만, 이 또한 국가적 시혜적 정책의 민낯이 아닐까. 그러기에 장애인일자리 사업은 ‘양적 확대’에는 성공했으나, ‘질적 보장’에는 실패한 제도다. 숫자로는 일자리가 늘었지만, 근로시간과 임금, 복지의 실질적 보장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반형 일자리는 경력 발전의 한계를, 참여형 일자리는 근로권의 배제를 겪는다. 그 어느 한쪽도 장애인의 ‘노동 존엄’을 완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일자리 사업은 단순한 일자리 제공이 아니라,‘노동의 지속 가능성’과 ‘삶의 자립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 14시간의 인위적 제한을 폐지하고, 근로시간을 개인의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게도 확대되어야 하며, 일반형 일자리는 예산 의존형 단기고용이 아닌, 상시·지속형 공공근로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2년 제한 이후에도 상위 단계의 ‘전이형 일자리’나 민간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제도화해, 장애인이 반복되는 단절의 고리를 끊고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행정의 효율보다 사람의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일자리는 복지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일반형이든 참여형이든, 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노동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14시간의 벽’을 넘어설 때, 장애인일자리 사업은 비로소 ‘정책’이 아니라 ‘사람의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사회적 제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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