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이 가능한 학생’에서 ‘함께 배우는 학생’으로, 통합학급 운영의 전환

[기고] 조주희 총신대학교 교수

2025-11-14     기고/조주희

학교의 교실에는 여전히 ‘학습이 가능한 학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 기준은 정해진 속도에 맞춰 학습할 수 있고, 규칙을 이해하며, 수업 흐름에 적응할 수 있는 학생을 ‘정상적’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전제 속에서 통합학급의 장애학생은 종종 ‘예외적 존재’로 분류된다. 교사는 배려의 마음으로 지원하지만, 수업의 구조는 여전히 비장애학생 중심으로 짜여 있다. 통합학급의 진정한 전환은 ‘학습이 가능한 학생’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이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적 학습공동체로 나아가는 일에서 시작된다.

통합학급의 가장 큰 과제는 ‘누구의 기준으로 수업이 운영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많은 경우, 장애학생의 학습권 보장은 ‘수업 속도 조절’이나 ‘과제 단순화’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장애학생의 참여를 ‘조정된 형태의 참여’로 제한할 뿐, 학습의 주체로 세우지 못한다. 교실은 한 명의 학생이라도 참여하지 못한다면 이미 완전한 학습공동체가 아니다. 따라서 통합학급의 운영은 ‘학습이 가능한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구조에서 ‘모두가 배우는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 전환의 핵심은 교사의 수업 설계에 있다. 통합학급 운영의 출발점은 장애학생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업 자체를 유연하게 디자인하는 일이다. 같은 목표라도 다양한 접근 방식이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 수업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배우는 목표가 있다면, 비장애학생은 글쓰기나 발표로, 장애학생은 그림, 말하기, 촉각자료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교사가 학습의 형식과 평가의 방법을 다양화할 때, 학생은 자신의 방식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학습설계(UDL,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의 핵심이자, 통합학급 운영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또한 교사는 학습의 ‘속도’보다 ‘경험’을 중시해야 한다. 장애학생이 수업에서 다소 느리게 반응하더라도, 그 과정이 곧 배움이다. 교사는 기다림을 단순한 인내가 아닌 교육적 신뢰의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 수업 속도가 늦어질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교사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다림 속에서 학생은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이해하고, 또래는 ‘다른 속도의 학습’을 경험한다. 통합학급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차이를 함께 살아내는 과정에 있다.

통합학급 운영의 전환은 또한 관계의 재구성을 요구한다. 장애학생이 또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협력학습 구조를 활성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별 프로젝트나 또래 멘토링 활동을 통해 학생이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함께 기여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바뀐다. 이러한 경험은 또래에게도 차이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시민적 감수성을 길러준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 간 협력을 조정하고, 서로의 차이가 존중되는 관계적 배움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학교는 통합학급을 ‘특수한 학급’으로 구분하는 인식을 넘어, 학교 전체의 문화로 확장해야 한다. 통합학급은 일부 학생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다름 속에서 배우는 보편적 학급 모델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 특수교사, 행정 담당자, 학부모가 함께 협력하는 구조가 필수적이다. 교사는 혼자가 아니라, 전문가 네트워크 속에서 통합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학습이 가능한 학생’ 중심의 교육은 성취의 속도에 따라 학생을 구분하지만, ‘함께 배우는 학생’ 중심의 교육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배움을 정의한다. 학교는 완벽한 학습자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함께 배움을 만들어가는 공동체이다. 통합학급은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다름 속에서 배움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장이다.

결국 통합학급 운영의 전환은 ‘누가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함께 배우느냐’의 문제이다. 교실에서의 작은 변화—교사의 언어, 학생의 참여, 수업의 구조—가 모여 학교의 문화를 바꾼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회로 이어진다. ‘학습이 가능한 학생’을 기준으로 세운 교실은 늘 누군가를 배제하지만, ‘함께 배우는 교실’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포용교육의 미래는 그 교실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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