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시행령 개정안, 장애인 접근권 후퇴시키는 명분 될 수 없다
[성명]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10월 2일)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28일 입법예고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차법) 시행령」일부개정령안은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의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대폭 축소하여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오히려 퇴행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접근성 확보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장애인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오히려 기업과 소상공인의 민원에만 기초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개정안 제10조의2 제2항은 무인정보단말기 정당한 편의 제공 요건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기존 조항에 있던 점자블록, 바닥재 구분 설치, 휠체어 전면(前面) 및 하부 공간 확보 등 물리적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을 삭제하였다. 현행 제도에서는 기기 자체의 접근성 확보와 물리적 환경 개선을 함께 충족해야 되지만, 개정안은 “검증기준을 준수한 단말기, 적절한 위치와 음성안내장치 설치”만으로 충분하다고 규정해, 최소한의 장치만 갖추어도 정당한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장애인이 실제로 기기에 접근하고 이용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를 무시한 것으로, 접근권을 형식적 요건으로 축소한 심각한 후퇴다.
더 나아가 개정안은 정당한 편의 의무의 예외 대상을 확대하였다. 기존에는 근린생활시설 용도로 쓰는 50㎡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한해 의무 완화가 적용되었으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소상공인(상시근로자 10인 미만의 사업자 등)과 테이블오더형 소형제품 설치를 예외에 포함하였다. 이로 인해 596.1만개(2023 소상공인실태조사)에 달하는 소상공인 기업체는 사실상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많은 음식점·편의점·카페 등 생활 속 주요 매장에서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게 된다. 이는 “소규모에만 예외를 둔다”라는 원래 취지를 넘어선 전면적 면제이며, 법의 실효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인력 지원과 호출벨 설치로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호출벨은 단순히 인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며,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 현장에서 시각장애인은 호출벨의 위치를 알기조차 어렵고, 청각장애인은 호출 신호를 확인할 수 없으며, 휠체어 이용자는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호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애유형별 접근권 보장은 물론 보조인력 지원, 호출벨 설치의 명확한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을 비롯한 장애인단체는 이미 보건복지부와의 관련 간담회에서 무인정보단말기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기 자체의 접근성 확보와 물리적 환경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전달하였다. 특히 한국장총은 적용 예외 및 유예 대상 규모와 수준, 두 법령(장차법, 지능정보화기본법)간 조항 정합성 등에 대해 관련 부처 간 긴밀한 협의 조정을 전제하였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주요 민원 단체 등 한쪽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당사자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협의토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으며, 관계부처 간 협의도 부실하게 진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검증기준 적용 의무를 강화하며 「디지털포용법 시행령」을 통해 의무를 제조․임대사업자까지 확대하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을 통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등 기술 지원을 병행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만이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며 제도 간 정합성마저 해치고 역행하는 모순된 결과를 낳았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후퇴시키는 이번 시행령 개정안 추진을 철회하고 기기와 물리적 환경을 함께 충족하는 장차법의 취지와 원칙을 회복하라.
○ 소상공인과 테이블오더까지 확대된 면제 규정을 재검토하고, 소상공인의 재정적 부담 문제는 별도의 국가 지원 정책으로 해결하라.
○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상호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기 자체의 접근성 적용 기준 의 법적, 제도적 정합성을 유지하라(테이블오더 적용, 웹사이트․앱(QR) 제공 등).
이번 개정안은 점자블록 설치, 공간 확보 등 필수적인 물리적 기준을 삭제하고, 소상공인과 테이블오더까지 면제를 확대하여 일상에서 장애인이 무인정보단말기를 이용할 권리를 사실상 박탈하는 것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이러한 차별적 개정안에 대해 입법예고 기간 동안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출하고 관계부처를 상대로 제도개선을 끝까지 요구할 것이다.
2025. 10. 2.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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