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말하는 힘, 담론과 헤게모니를 넘어

2025-10-02     칼럼니스트 김경식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우리는 담론(談論) 속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에 의해 말하게 된다.” 푸코의 이 말은 언어와 사고가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권력의 장치임을 잘 보여준다. 담론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정상으로, 무엇을 문제로 규정할지 정하는 힘이다. 담론을 통해 사회는 인간을 분류하고, 어떤 삶이 정상적이고 어떤 삶이 예외적인지 구획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지배는 단순히 강제가 아니라, 동의를 통해 유지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헤게모니(Hegemonie). 헤게모니란 억압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진 상식자연스러움을 통해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는 힘이다. 그람시가 강조했듯, 권력은 경찰의 곤봉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언론·종교·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동의를 얻으며 작동한다.

이 두 개념은 오늘날 장애를 둘러싼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담론은 장애를 결핍으로 말하고, 헤게모니는 그러한 시선을 당연한 상식으로 굳혀 버린다. 그 결과 장애인은 제도와 관계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예외자’, ‘조정되어야 할 존재로 위치 지워진다.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는 여전히 비장애인을 표준으로 삼는다. 교실의 배치는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교통수단은 장애인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며, 가전제품과 디지털 기기는 시각·청각장애인을 외면한 채 설계된다. 심지어 복지제도조차도 장애인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기보다 비장애인처럼 살 수 있도록 보조하는 데 치우쳐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위계적이다. 비장애인은 돕는 사람,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된다. 장애인의 권리는 권리가 아니라 은혜로 둔갑하고, 공동체 담론조차 장애인을 함께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묘사한다.

담론이 이러한 언어를 제공한다면, 헤게모니는 그것을 상식으로 고착시킨다. 그래서 이동권 투쟁은 사회적 불편으로 낙인찍히고, 권리 요구는 특혜로 오해받는다.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담론, 새로운 합의를 위해서는 첫째, 권리 기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시민이다. 활동지원, 접근성, 이동권은 은혜가 아니라 권리다. 법과 제도는 최소한의 생존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 생활 보장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 관계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돌봄은 수직적 보호가 아니라, 상호의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적인 존재이지, 주체와 객체로 나뉘는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관점은 교육 현장, 직장, 지역사회에서 공존을 전제로 한 평등한 관계 맺기로 구체화될 수 있다.

셋째, 담론 생산의 주체 전환이 중요하다. 장애 담론은 더 이상 전문가나 정책결정자의 언어로만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의 목소리와 경험이 제도와 담론의 중심에 서야 한다. 이는 장애 당사자 참여를 의무화하는 정책, 당사자 주도의 연구와 미디어 제작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넷째, 헤게모니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비장애인 중심질서가 사회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장애를 포함하는 것이 사회의 정상이라는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 언론, 문화 콘텐츠를 통해 다양성은 예외가 아니라 보편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합의를 형성할 수 있다.

다섯째, 구체적 제도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장애등급제 폐지 천명(闡明)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신청주의, 불충분한 활동지원 시간,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 공공주택의 물리적 장벽 등을 개선하는 것은 담론 전환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조건이다. 말뿐인 포용이 아니라 현실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담론을 새롭게 만든다.

푸코가 말했듯, 담론은 권력을 낳고, 그람시가 말했듯 헤게모니는 동의를 통해 지배를 재생산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그것을 사회적 동의로 확장하는 것은 곧 새로운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일이다.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권리이고, 부담이 아니라 사회 구성의 본질적 일부다. 그 인식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상식이 될 때, 장애인은 당당한 시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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