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디자인’ 개념, 장애영역에서의 기대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혁신은 더 이상 연구실 속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민이 살아가는 생활 현장에서,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실험하는 리빙랩(Living Lab)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리빙랩은 1990년대 후반 MIT에서 시작되어,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도시·환경·복지 영역까지 확대된 참여 기반의 실험적 혁신 방법론이다. 그 핵심은 사용자 중심성과 공동창조이며, 실제 생활 맥락에서 반복적 실험과 피드백을 통해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바로 이 리빙랩의 철학은 장애영역에서 특히 중요하다. 장애인은 오랫동안 정책과 제도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어 왔지만, 리빙랩은 그들을 문제 해결의 주체적 파트너로 위치시킨다. 그리고 이 참여와 경험을 구체적인 서비스 설계의 언어로 전환하는 도구가 바로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이다.
서비스 디자인은 사용자의 경험을 중심에 두고 서비스의 전체 과정 즉 접점, 절차, 환경, 관계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방법론이다. 단순히 만족도를 조사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가 겪는 여정을 시각화하고, 이해관계자가 함께 개선안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리빙랩이 “참여의 장치”라면, 서비스 디자인은 “그 참여를 제도와 기술로 번역하는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장애영역에서 이 접근법은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다. 대중교통 이동권 문제는 대표적이다. 휠체어 이용자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환승, 승차, 하차, 목적지 도착까지 수많은 장벽을 마주한다. 서비스 디자인은 이 과정을 단계별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실시간 승강기 고장 알림 앱, 다감각 안내 시스템, 장애인콜택시와 대중교통 연계 같은 구체적 개선안을 설계할 수 있다.
보조기기 전달체계 역시 서비스 디자인이 필요하다. 지금은 신청부터 평가, 지급, 사후관리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지역별 편차도 크다. 서비스 디자인은 이 전체 과정을 서비스 여정으로 재구성하여, 신청 절차 간소화, 사용자 중심의 사후관리 시스템 같은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공공 키오스크와 디지털 행정 서비스도 중요한 영역이다. 무인 발권기, 은행 단말기, 병원 접수기 등은 여전히 장애인의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서비스 디자인은 장애유형별 시나리오를 통해 글자 크기, 음성 안내, 쉬운 언어 지원, 화면 높이 조정 등 접점 문제를 구체적으로 반영하게 한다. 정부24 같은 전자정부 서비스도 로그인부터 결과 통보까지의 여정을 시각화함으로써, 음성 안내와 위임 기능 같은 개선안을 도출할 수 있다.
지역사회 돌봄도 마찬가지다. 병원 퇴원 후 재가돌봄 신청, 서비스 매칭, 일상생활 지원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은 서비스 디자인을 통해 보다 촘촘히 설계될 수 있다. 장애인, 가족, 돌봄인력, 지자체가 함께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범사업을 통해 현실성을 검증한다면 돌봄 서비스는 단순한 행정적 배분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서비스가 될 것이다.
서비스 디자인의 의의는 분명하다.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을 정책 설계의 핵심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행정 절차와 기술 개발에 장애인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반영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정책은 더 정당해지고 서비스는 더 실용적이며 사회는 더 포용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 디자인 개념의 장애영역에서의 확산과 보편화를 위해 첫째, 제도적 제도화와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리빙랩과 서비스 디자인은 단발성 연구나 시범사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참여 플랫폼을 마련해, 장애인의 목소리가 제도 설계 단계부터 구조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지속 가능한 재정 지원과 인프라 마련이 요구된다. 서비스 디자인은 반복적 조사, 프로토타입 개발, 사용자 피드백 등 시간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안정적 예산 편성과 민·관 협력 모델이 뒷받침될 때만이 장기적 성과가 가능하다.
셋째, 대표성과 포용성 확보가 중요하다. 특정 장애 유형이나 일부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발달장애, 중증장애, 고령장애인 등 다양한 당사자와 가족, 활동지원사, 지역사회의 폭넓은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비스 디자인이 진정으로 포괄적이고 공정한 설계 언어가 될 수 있다.
리빙랩이 장애인의 주관성을 참여의 장으로 끌어냈다면, 서비스 디자인은 그 경험을 제도의 언어로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할 때, 장애정책은 등급과 점수의 논리를 넘어 삶의 경험과 권리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 장애영역 서비스 디자인은 단순한 행정 개선이 아니라, 더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혁신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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