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트럼프 정부 대외정책이 장애계에 던지는 시사점
인권과 경제에 걸림돌 되는 시대착오적 정책·법·제도
【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얼마 전 9월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조지아주 소재 현대차-엘지(LG) 에너지 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 대부분은 건설 현장에서 장기간 근무했다고 한다. 지난 8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대한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 약속 이후 발생한 사건이라 충격적이고, 한편으론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 인력들 대부분이 B-1/B-2라는 단기간 비자나 ESTA(전자여행여가)로 입국해 장비 설치 등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는 외국인의 정식 취업 비자인 H-1B나 미국에서 다국적 기업이 직원으로 근무하는 L-1 비자 등 취업 비자가 다양하나, 단기 비자의 경우, 회의 참석, 협상 등 상용 활동에만 허용된다. 그래서 단기 비자지만, 현장에서 장비 설치, 기술 지도의 경우 상용 활동 아닌 노동이라, ICE에선 이를 불법 취업 비자로 본 거다.
미국에서 원하는 정식 취업 비자를 받으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전 세계에서 신청하는 H-1B 비자의 경우엔 발급 건수가 매년 85,000건으로 제한되다 보니, 로또식 추첨으로 당첨자가 정해지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정부로 인해 비자 심사는 굉장히 까다로워졌고, 신청 비용과 시간도 막대하다.
위와 같은 공장 건설의 경우엔 단기간에 신속한 인력투입이 필요한데, 정식 취업 비자 취득엔 오랜 시간이 걸리니, 이 비자를 취득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거다. 하나, 현재 트럼프 정부에선 외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정책을 통해 쇠락해가는 제조업 부흥을 노리고 내심 그걸 기대한다. 그런데, 단기 비자의 허용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다 보니, 오히려 제조업 등의 부흥은커녕 외국 인력 방출 여지만 커지는 모순만 생긴다.
이와 관련해 SBS뉴스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지식재산권에 철저하기에 자신들의 기계 설치·유지 시 자기 노동자들을 데려오고 있지만, 미국 노조에서 그 일자리를 가지려고 강하게 압박했다”고 말했다(출처: 미 투자 한국공장 이민단속 배경엔 일자리 불만 가진 노동자들, SBS뉴스, 2025년 9월 9일 기사).
하지만 배터리 산업이 미국에선 워낙 생소한 데다,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산업이라 그런 조건을 갖춘 미국 노동자를 찾기 쉽지 않다. 여기에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근로조건 상당히 까다롭고,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높고, 언어적 소통 등의 문제도 있는데, 한국 노동자면, 말도 통하고 회사 입장에선 인건비 면에서도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미국 노동자들 고용이 쉽지 않다.
사실 백인 중산층들에겐 외국인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외국인 혐오 정서가 있었고, 이런 이들의 정서를 이용한 트럼프는 2016년, 2024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러니, 조지아주 현대차공장 한국인 구금사건이 그런 배경하에서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백인 중산층들의 정서를 반박하는 여러 자료들이 있다. 한 예로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선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저임금 일자리를 저숙련 이민자들이 채우고 고숙련 이민자들은 기술 혁신과 창업 등으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내용들이 연구결과의 주된 골자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에선 2016년 이민자들은 노동 시장 유연성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 등에 기여해 경제성장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것만 봐도 이민자들이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며 오히려 미국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있고 백인 중산층들 정서는 비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고 지금까지 다양성을 중시했던 국가인데, 자국인의 일자리 보호를 목적으로 불법이민자 단속이란 명목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추방한다? 러우전쟁 등으로 분노가 일지만 그래도 전 세계가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걸 생각해보면, 미국의 이런 조치는 상당히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면서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시대착오적인 조치가 한국인 등의 인권을 침해하고, 미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거다.
우리나라에 소식이 전해지니 민중들은 분노했고, 미국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상당했다. 이를 의식해선지,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 전문인력이 미국에서 미국인을 가르치고 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박, 컴퓨터, 반도체 등 미국이 이들 제품 제조법을 배우거나, 과거에 미국 자신들이 잘했으나 지금은 배워야 하는 제품 제조법에 대해서도 배우길 바란다며 말이다. 더불어 미국은 지금은 배 한 척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은 시인했다.
하긴 선박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 미국 해군은 세계 최강으로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선봉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쇠퇴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미국엔 ‘존스법’과 '바이-돌프레슨 법'이란 게 있는데, 선박 건조 시 자국 선박으로, 선원은 미국인 탑승을 의무화해 자국 해운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 골자다.
외국과의 경쟁을 피하고 국가 안보 면에서 유리해 좋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은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보호하다 보니 혁신을 게을리하고, 경쟁에서 뒤처졌다. 미국 내 조선업계와 노조는 힘이 막강해 선원들 임금도 고임금이다. 그게 물류비용 및 선박 비용에 반영돼 선박과 물류비가 상당히 비싸다. 여기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조선업계의 나은 기술과 싼 물류비용, 선박 등으로 인해 미국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런 배경이 있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선박 등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그랬던 거다. 미국 내에선 동맹국에 아예 자신의 영토 바닷길을 열어주자는 내용 등을 담은 존스법 개정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또는, 존스법 개정까지는 아니어도 한국 같은 동맹국엔 미국 선박의 수리 등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노조와 조선업계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는 없다. 여기에 이민자격을 논하며 오로지 미국인만을 위하겠다는 트럼프의 이민 정책이 실제로 시행되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존스법 폐지는커녕 외국인을 혐오해 인권을 침해하고, 외국 기업 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결국, 최근 트럼프 정부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들은 시대착오적 법과 정책들이 인권을 억압하고 미국 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게 나로선 남 일 같지 않다. 문득 휠체어 이용인 등 장애인의 건물 접근권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닥면적과 건축 시기 등으로 건물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을 제한하는 ‘장애인등편의법’을 개정하라는 장애계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2022년 5월 이후의 바닥면적 50㎡ 이상 건물에 대해서만 편의시설 설치의무 부과하도록 정부는 법을 개정해 비판에 직면했다.
이런 와중에 대법원은 소규모 소매점 편의시설 미설치로 장애인 접근권이 침해당한 것을 두고 대한민국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장애계와 시민사회 단체는 희망을 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장애인등편의법’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6층 이상으로 연면적 2000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만 승강기 설치를 의무화한 건축법 제64조 1항은 실제 6층 이하 건물 대부분이 계단으로 이루어진 현실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어 더욱 화가 난다.
건축법의 이 조항이 만들어질 때가 52년 전이었고, 오일쇼크였던 당시 우리나라는 에너지 절약이 철칙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경제성장으로 1인당 국민 총소득이 올라갔고, 장애인의 권리의식도 전보다 훨씬 높으니 접근권 보장 차원에서 6층 이하의 건물에도 승강기를 설치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럼에도 설치하지 않는 건물이 대부분이란 건 여전히 장애인의 접근권을 이 사회에서 시혜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다.
2층에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 있는 건물들이 적지 않은데, 건물 접근성이 떨어지면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장애인의 행복추구권 침해는 물론 맛집, 카페 등 상점 고객인 휠체어 이용인 등 장애인을 배제하는 셈이 된다. 그러면 상점 매출 하락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또한, 접근성이 떨어지면 휠체어 이용인 등 장애인은 경제활동이 어렵게 되고, 이에 따라 생산가능인구가 낮아지니 생산성 하락, 인적자본 손실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그러기에 27년째 이어지는 ‘장애인등편의법’의 근본적 미개정과 건축법 제64조 1항의 존재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며, 이런 시대착오적인 법들과 정책이 장애인 인권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다.
올해 7월 1일엔 KCD-9(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9차 개정판)이 발표됐는데, 여전히 자폐증과 정신지체란 명칭이 그대로 유지됐다. 자폐증이란 단어는 외국에선 8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선 40년 전에 사용됐던 단어인데 이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양성이자 정체성인 자폐성 장애를 여전히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바라보며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것이 ABA(응용행동분석) 행동치료다.
이건 비장애인 중심의 행동은 바람직하며, 자폐인의 행동은 소위 문제로 규정하는 게 그 골자다. 그런데 문제로 규정한 행동은 자폐성 장애인이 외부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자기 자극행동이다. 또한, 자폐성 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보다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에 따른 치료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침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비장애 중심의 기준은 자폐성 장애인에겐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니 강요에 가깝다. 비장애인 중심의 행동을 강요하면 처음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엔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장애에 대한 혐오 정서가 팽배한 우리나라엔 이게 왕따, 따돌림 등으로 학교폭력까지 이어질 소지가 크다. 게다가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ABA 치료 받은 장애 아동 중 일부가 불안감, 낮은 자존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것들을 보면, 자폐성 장애를 질병으로 보았을 때 인권침해는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비장애 중심의 기준에 따르도록 하는 극단적인 형태는 시설수용인데, 시설에 거주하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 상당하다. 여기에 지적, 자폐성 장애가 고쳐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장 15년 감금하는 치료감호소 현실까지 떠올리면 기가 차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권리의식은 향상되는 현실에도, 오래 전부터 사용되던 이 ‘자폐증’, ‘정신지체’라는 단어로 인해 이렇게 심한 인권유린까지 된 것을 보면 시대착오적 용어의 폐해는 상당히 심각하다.
노동과 고용에 있어서도 고용주들은 자폐성 장애인의 장애를 병으로 인식해, 고용주들은 자폐인이 일할 수 없을 거라는 단정을 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치료 대상이지, 일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직장 내에서 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합리적 편의를 권리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률은 낮으며 심지어 평균 임금까지 최저임금에 한참 밑인 40만 원대를 받고 있는 현실인 거다.
최근 2023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표한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보면 경제활동 참여율의 경우 지적장애인은 28.5%, 자폐성 장애인은 20.3%였다. 이는 전체 장애인 경제활동 참여율인 36.3%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이런 걸 보면 방금 위에서 말한 배경들이 이 수치들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용을 통해 당당하며 세금 내며 정부 재정에 기여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나온다는 걸 기대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장애수당, 의료비 등 복지비용을 지출하는데 정부가 훨씬 돈을 많이 쓰게 될 것이 뻔하며, 결국엔 정부 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와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니 말이다.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 보더라도 역시 시대착오적 용어의 폐해가 이렇게까지 막대하다는 게 느껴진다.
장애여성과 관련해서도 시대착오적인 건 장차법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장차법 장애여성 조항을 보면, 임신, 출산, 양육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임신, 출산, 양육은 여성만 하는 게 아니다. 남성도 임신과 관련된 정자 건강이라든가, 육아 등에 책임이 있어, 임신, 출산, 양육은 남녀 공동책임이니 임신 등의 관련 조항은 모·부성권 조항으로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여성 조항에만 있는 걸 보면, 여성은 여전히 애 낳는 기계로만 여기는 지독히 시대착오적인 성 고정관념을 엿볼 수 있다.
2023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보면 장애남성은 44.6%에 비해 장애여성은 22.9%에 불과한데, 이는 시대착오적 성 고정관념과 무관하지 않다. 고용주들은 여성을애 낳는 기계, 육아의 주체 등으로 보고, 장애인은 생산성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기에 그렇기도 하다. 이런 성에 관련된 고정관념을 종식해 남녀평등을 이 사회에서 구현하지 않는 이상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덫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른바 ‘헬조선’이 지속될 뿐이다.
그러기에 시대착오적인 이번 트럼프의 모순된 대외정책이 나로선 남의 일이 아니었던 거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장애인 정책과 법, 제도 등을 시정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에도 긍정적인 선순환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장애인의 인권의식이 증진되는 만큼, 이제 정부와 지자체도 시대착오적인 관행과 구태에서 벗어나, 이들의 기본권 보장과 자유 향유를 기본 철학으로 삼는 정책, 법, 제도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과 느낌을 갖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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