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성, 정상성,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과학의 세계에서 주관성은 오랫동안 배제의 대상이었다. 자연과학은 실험과 측정을 통해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면서, 연구자의 감정이나 편향을 ‘오차’로 간주했다. 따라서 주관성은 통제하고 제거해야 할 위험 요소였다.
그러나 사회과학에 들어서면 주관성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인간 사회는 단순한 법칙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개인과 집단이 부여하는 의미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삶의 만족도, 불평등에 대한 인식, 공동체적 소속감은 객관적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회과학에서 주관성은 곧 연구의 본질적 대상이 된다.
장애영역에서 주관성은 더욱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장애인의 삶은 단순히 의학적 상태나 신체적 손상으로만 규정될 수 없다. 이동권의 제약, 사회적 배제, 교육 기회의 차별은 외부의 객관적 지표로만은 포착되지 않는다.
실제로 무엇이 불편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순간에 존엄을 느끼는지는 장애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따라서 주관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권리의 토대를 세우는 일이다.
이 맥락에서 반드시 함께 논해야 할 것이 바로 ‘정상성’이다. 근대 사회는 평균을 인간 존재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 평균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규범화되었다. 평균에서 벗어난 몸과 정신은 ‘비정상’으로 낙인찍혔으며, 장애인은 이 정상성의 이름 아래 측정되고 분류되며 배제되었다.
푸코가 말한 것처럼 정상성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규율과 통제의 장치였다. 그러나 장애인의 주관성은 이 정상성에 맞서는 언어가 된다. ‘정상적인 몸’이라는 절대적 기준 대신, 휠체어를 타는 경험, 보조기기를 활용하는 생활, 다른 속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곧 한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될 때, 정상성은 절대적 권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우리 사회의 제도적 변화도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려 하고 있다. 2019년, 숫자로 구분하던 1급~6급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당사자의 다양한 욕구를 고려하겠다는 취지가 선언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남아 있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라는 또 다른 점수화 체계가 도입되었다.
의학적 판정과 정상성의 기준은 여전히 제도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이 제도 설계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상징적 진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완전한 종식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다.
그럼에도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개인예산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 실험, UN 장애인권리협약의 국내 이행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주관성을 제도화하려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정상성에 맞서는 권리의 정치다.
주관성은 더 이상 사적이고 사소한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사회, 그리고 인간 존엄을 새롭게 구성하는 열쇠이다. 자연과학에서 통제의 대상이던 주관성은 사회과학에서 연구의 본질로 자리 잡았고, 장애영역에서는 정상성의 폭력에 맞서는 권리의 언어로 승화되었다.
주관성을 존중할 때 객관성은 더욱 풍부해지고, 정상성은 해체되며, 다양한 인간 존재의 방식이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다.
장애인의 주관적 경험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객관적으로도 불평등한 사회일 뿐이다. 한국의 제도가 여전히 정상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장애인의 주관성이 반영되지 않은 정책과 제도가 과연 정당할 수 있는가? 답은 자명하다. 진정한 객관성은 주관성을 배제할 때가 아니라, 그것을 존중하고 포함할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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