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돌봄과 케어러 중심 돌봄의 비교와 전환

2025-09-10     칼럼니스트 김경식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  장애인 돌봄은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전통적 역할과 책임으로 인식되어 왔다. 부모와 배우자, 형제자매 등 가족은 장애인을 위한 가장 가까운 돌봄 제공자로서, 일상생활 지원과 정서적 지지를 담당해 왔다. 이른바 가족돌봄 체제는 정서적 유대와 무조건적 헌신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변화와 장애인 권리 담론의 확대 속에서 그 한계가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에 반해 케어러 중심 돌봄은 돌봄을 사적 영역이 아닌 사회적 권리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돌봄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우선, 가족돌봄은 혈연관계와 정서적 연대감을 기반으로 하여 장애인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체계는 돌봄 부담이 가족 내부, 특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향을 낳으며, 이는 경제적 기회 상실과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또한 돌봄이 통제와 의존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장애인의 독립적인 삶과 권리 실현을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한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부모 부양 중심의 돌봄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지속 불가능한 양상을 띠게 된다.

반면 케어러 중심 돌봄은 전문성을 갖춘 활동지원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제도적 돌봄 인력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다. 이는 돌봄을 가족의 사적 의무가 아니라 사회가 보장해야 할 공적 서비스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케어러 중심 돌봄은 개별 장애인의 특성과 욕구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가능하게 하고, 가족의 과도한 부담을 완화하며, 무엇보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더불어 돌봄 노동을 정당한 직업으로 인정하고 사회적 보상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돌봄을 사회적 자원으로 확립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외국의 사례는 이러한 전환의 방향을 제시한다. 영국은 Care Act 2014를 통해 돌봄을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보장해야 할 권리로 규정하고, 장애인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에게도 별도의 케어러 평가(carer’s assessment)’를 실시하여 사회적 지원을 제공한다.

스웨덴은 1994년 제정된 LSS(장애인 지원법, Act Concerning Support and Service for Persons with Certain Functional Impairments)을 바탕으로, 가족이 아닌 전문 돌봄 인력을 통한 개인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 고용한 활동보조인을 통해 주체적으로 생활을 설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 ‘개인적 지원(personlig assistans)’은 스웨덴 장애인 자립생활의 핵심 기반이 된다.

또한 일본은 개호보험제도(介護保険制度, Long-Term Care Insurance System)를 도입하여 가족이 아닌 공적 서비스 중심의 돌봄 구조를 마련하였다. 일본의 제도는 초기에는 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점차 장애인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돌봄이 가족의 무보수 노동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서비스로 확립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가족돌봄이 지닌 정서적 지지 기능과 긴급 상황에서의 즉각적 대응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돌봄의 주체가 가족에 전적으로 한정될 때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근본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가족은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돌봄의 중심은 케어러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족주의적 돌봄 체제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그러나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이 강조하듯이, 돌봄은 개인의 권리이자 사회의 책무이어야 한다. 활동지원제도의 지속적 확충, 케어 노동자의 처우 개선, 지역사회 기반의 커뮤니티 케어 체계 구축은 가족돌봄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과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제의 확립이다. 돌봄을 개인과 가족의 선택과 희생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장애인의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돌봄은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필요할 수 있는 보편적 위험이자 사회적 과제이므로,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돌봄을 권리로서 법제화하고, 돌봄 인프라를 균형 있게 확충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책임을 분담하는 체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의 사랑과 헌신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돌봄 체계의 보완적 요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장애인의 돌봄이 국가의 확고한 책임 아래 공적으로 운영될 때, 비로소 장애인의 존엄과 자립, 그리고 사회적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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