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농인의 언어가 금지되다

2025-08-01     김대빈 기자

안녕하세요? 한국농아방송 김완수 앵커입니다. 

1880년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농교육 역사상 가장 중대한 회의로 평가받는 ‘국제 농교육자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 세계 농교육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농교육의 방향성과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이 회의는 결과적으로 전 세계 농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는 농교육 방식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수어를 활용한 교육, 또 다른 하나는 구화를 활용한 청인 중심의 음성언어 교육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많은 교육자들은 농학생들도 청인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말을 가르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수어는 점차 배제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회의는 결국 구화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편향된 구성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약 164명 중 대부분이 청인이었고, 구화법을 지지하는 교육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수어의 중요성과 농인의 시각적 언어 문화를 옹호한 인물은 미국의 갈로뎃 박사 등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구화법이 수어법보다 농교육에 더 효과적이고 우월하므로, 전 세계 농학교에서는 구화법을 기본으로 채택해야 한다.”

이 결정은 단순한 교육 방식의 선택을 넘어, 전 세계 농학교에서 수어를 금지하고 구화법만을 허용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 농학교에서 수어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많은 학교에서는 농학생이 수어를 사용하면 벌을 주는 등 강압적 방식이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농교사들은 교단에서 밀려나고, 청인 교사들이 구화법 중심으로 교육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농교육의 본질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농학생들이 자신의 언어와 정체성을 잃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억압은 교육의 질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농학생들은 음성언어를 온전히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어마저 금지되자 의사소통의 기반 자체가 무너졌고 결과적으로 학업 성취도가 저하되고 사회 자립에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밀라노 회의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농인들은 수어를 억압당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수어의 언어학적 가치가 학문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농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되찾기 위한 수어 권리 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국가들이 수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농인의 언어권과 교육권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인권 문제로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10년 세계농연맹(WFD)은 1880년 밀라노 회의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며, 그 결정이 농인의 권리와 언어를 침해한 역사적 오류였음을 인정했습니다. 

1880년 밀라노 회의는 농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회의로 인해 수어는 100여 년 동안 억압당했지만 당시의 아픔은 오히려 농인 인권 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다양성과 언어의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1880년 이탈리아 밀라노 회의는 그러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입니다. 

수어뉴스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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