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 정체성의 여정, 데프후드(Deafhood)
안녕하세요? 한국농아방송 김완수 앵커입니다.
오늘 뉴스에서는 단순한 ‘청각장애’를 넘어 농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새롭게 바라보는 개념 ‘데프후드(Deafhood)’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청인들은 흔히 농인을 ‘들을 수 없는 사람’ 또는 ‘청각장애인’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데프후드는 이와 같은 시선을 180도 뒤집습니다. 농인은 단순히 장애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와 문화, 존재의 방식을 가진 농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데프후드는 2003년 영국의 농문화 연구자인 패디 래드(Paddy Ladd) 박사가 처음 제안한 개념입니다. 그는 데프후드를 단순한 상태가 아닌, 농인이 스스로 정체성과 문화를 찾아가는 내적 여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인 중심 사회의 기준과 시선을 넘어,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존엄과 자긍심을 회복해가는 평생의 여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데프후드는 왜 중요한 개념일까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청각장애’라는 용어는 의학적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즉, ‘들을 수 없음’을 결핍이나 장애, 병리적인 상태로 보는 시각입니다. 그러나 데프후드는 농인의 삶을 언어와 문화, 시각성을 중심으로 해석합니다. 농인은 ‘장애‘와 ‘결핍’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농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농인을 이해하지 못한 청인 교사들이 농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모르냐”고 타박하고, 구화를 쓰는 학생과 비교하며 ‘공부 못하는 아이’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 농학교에서 해마다 ‘말하기(웅변) 대회’를 열었던 것도 구화교육의 잔재였습니다.
농학교를 졸업한 A씨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예전엔 수어를 쓰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선 ‘수지한국어’를 사용했고, 주변에서는 그걸 지식인처럼 여겼죠 그런데 졸업 후 ‘데프후드’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 ‘수어가 바로 나의 언어이며 농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임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
농인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배제되거나 불쌍히 여겨질 대상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언어와 문화, 공동체를 지닌 온전한 존재입니다. 데프후드는 바로 그런 시선을 회복하는 개념입니다.
농인의 정체성은 수어를 통해 형성됩니다. 수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언어 그 자체입니다. 데프후드는 과거 수어를 억압했던 구화주의 교육을 비판하며 농인이 스스로 언어와 문화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재 전 세계 농인들은 데프후드라는 개념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국경과 언어를 넘어 농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농인은 단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각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이며 자신만의 삶과 문화를 지닌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농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언어인 수어를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포용 사회가 시작됩니다.
수어뉴스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국농아방송 iDBN(cafe.daum.net/deafon) / 에이블뉴스(www.ablenews.co.kr) 제휴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