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속에 가려지는 장애인 인권침해와 그 구조
주호민 아들 사태, 장애인 사회적 타살 등을 바라보며
【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오죽하다’란 말이 있는데, 국어사전에선 ‘정도가 심하거나 대단하다’는 뜻으로 나온다. 이와 관련한 ‘오죽하면’이란 단어는 상황이 좋지 않거나 심각함을 나타낼 때 쓰인다. 그 말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했다는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도 가만 보면 장애인 이동권이 수십년 동안 미보장된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요구하든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에 ‘오죽하면’이라는 말을 쓰는 게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오죽하면’이란 말을 듣는 게 상당히 힘들고 불편할 때가 있다.
얼마 전 2022년 5월 31일 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에서 40대 여성이 6세 발달장애인과 투신해 동반 자살했고(2022년 5월 23일), 같은 날 인천 연수구에선 60대 여성이 돌봄 요구가 큰 30대 장애인을 살해한 후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는데, 이에 대해 “부모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이것을 살인으로 다뤄야 하느냐?”라는 여론이 언론 보도나 온라인 여론에서 두드러졌다고 한다. (출처: '부모에 살해당한 장애인' 사건에, 김예지 의원이 꺼낸 중학생 당시 기억, 한국일보, 2022년 5월 31일 기사)
사실 장애인과 그 가족에 관한 가족지원체계는 이전 글들에서 수도 없이 말했지만, 이들의 욕구, 선호, 의지를 반영하고 존엄성을 존중, 증진하기보단 예산과 구 장애등급, 소득수준 등에 따라 지원을 제한하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부양의무제는 이전보다 완화되었지만, 의료급여에 관해선 여전히 폐지되지 않는 등, 장애인을 돌보는 책임이 아직도 가족에 오롯이 전가되고 있다.
활동지원의 경우도 장애 유형과 가구의 경제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장애인의 욕구, 선호는 무시된 채, 지체장애인 중심으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가 운영되는 등 성인 장애인에 대한 자립지원정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부모는 부양 부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사회에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결국 이 같은 사회적 타살을 강요받게 된다. 언론에서 사회적 타살의 이유를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보도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겠다.
그런데 언론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살해한 것에 대해 ‘오죽하면’이란 말을 하는 순간,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은폐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을 통해 가해자인 부모가 장애인을 살인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거나 면죄부인 이유에 대한 정당성만을 제공하며, 장애인 살인의 본질을 호도할 위험성을 준다.
더구나 장애인이 살해당한 참사의 책임은 말도 안 통하고, 부모를 힘들게 만들고 부모에게 고통을 안겨준 장애인 개인에게 있다는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을 유도하게 된다. 이런 인식이 있어서인지 장애인을 살해한 부모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살인죄가 아닌 집행유예 등으로 나왔다는 소식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안 그래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자립할 수 없고, 사회의 짐이라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팽배해 있는데 이런 판결들은 그런 편견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살해한 부모를 이해한다는 취지에서 쓴 단어 ‘오죽하면’이란 말이 정작 장애인 당사자에겐 상처, 족쇄로 다가올 뿐이다.
이럴 경우엔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등의 사회적 타살을 강요당하는 원인에 관해 분석하는 내용의 기사만이 있어야지, 부모를 동정한답시고, ‘오죽하면’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이란 말을 붙이지 않도록 언론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와 지침이 필요함은 물론, 법원 등의 사법부도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장애인 생명을 빼앗는 걸 관용하는 인식을 바꾸고 가해자에게 엄중 처벌하는 판결을 내리도록 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주호민 아들 사태에서도 ‘오죽하면’이란 표현이 나온 적이 있다. 바지를 내리는 등의 행동으로 아들은 특수학급 분리 조치가 되었는데, 이후 아들이 불안 증세를 보인 걸 느낀 나머지 주씨는 아동에게 불안 증세가 있다고 느껴, 이를 확인차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켰단다. 그랬더니 이후 녹음기에서 특수교사가 했던 말은 "진짜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 등이었다.
이와 관련해 1심에선 녹음기에 있는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됐지만, 2심에선 녹음파일이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되는 불법 증거물이라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제대로 표현하고 진술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애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2심의 판결은 유감스럽다. 물론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말이다.
사태 당시 주호민 측에서는 아들의 불안 증세가 상당히 심각하고 이를 알 길이 없어 오죽하면 녹음기까지 넣어서 아들을 보냈겠냐는 식의 심정을 드러냈다. 반면 교원단체나 교사 측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는 교사가 장애 학생 지도 과정에서 오죽하면 저런 감정적인 반응이 나왔겠냐는 식으로 의견을 표명했다.
물론 특수교사가 과도한 서류업무와 민원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고 여기에다 교사 입장에선 주호민 아들의 행동이 이해가 어려워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거야?“ 등의 감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었겠단 생각은 든다. 그럼에도 ’오죽하면‘이란 식으로 교사 입장을 두둔한다면 교사가 한 감정적 반응 등의 가해행위가 정당화되고, 이로 인해 주호민 아들과 그 가족은 정신적 학대와 상처를 받게 된다. 오로지 장애인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며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사실 교육 당국이 장애 인식 제고와 장애인 인권 보호에 대한 노력이 미흡함은 물론, 교육현장에 교사-학부모-학생 간의 갈등 조정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것, 인적 자원 투입이 충분치 못한 것 등이 주호민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 본다.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게 학생의 욕구, 선호, 의지를 존중하는 교육체계로의 전환, 학교 내 실질적인 갈등 조정 시스템 마련과 더불어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교육당국이 제대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쓰는 ’오죽하면‘이란 말이 자칫 잘못하면 장애인 인권침해를 정당화함은 물론 인권침해의 구조적 본질을 가릴 수 있다. 그러기에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오죽하면‘이란 말을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이 말을 부지불식 간에 사용한 나 자신도 성찰하는 계기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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