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미와 떠나는 무장애 여행지 “대만의 가오슝-③”

불광산 불타기념관에서 마주한 고요의 울림

2025-07-18     칼럼니스트 하석미

【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셋째 날, 나는 가오슝 시내가 아닌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는 불광산 불타기념관을 목적지로 정했다. 이른 아침, 호텔 조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뒤 프런트에 부탁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리프트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시내에서 외곽까지 가는 교통편이 복잡한 데다 시간도 절약하고 싶어 택시를 선택한 것이다.

멀리서 마주한 부광대불과 탑들의 조화. ©하석미

가오슝 시내에서 꽤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불광산 일반 관광객이라면 전용 셔틀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에게는 리프트 택시가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선택이었다.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시내에서 불광산까지 약 40킬로미터 거리를 쾌적하게 이동했다. 택시비는 대만 돈으로 약 1,500달러(한화 약 7만원) 정도가 들었고, 외곽으로 나가는 거리와 편의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도심을 벗어나 도착한 곳, 마음의 속도를 천천히 되돌려주는 장소. 바로 불광산에 도착했다.

불광산 입구를 지나, 천천히 마음으로 걷는 길

불광산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웅장한 정문이었다. 입구에 도착해 거대한 정문을 지나며 받은 첫 느낌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다는 묘한 경건함이었다.

불광산 입구에서 만난 정문의 위엄. ©하석미

입구의 아치형 구조물은 전통 궁궐의 대문을 연상케 할 만큼 장엄했고, 양 옆으로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그 정돈된 풍경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크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정문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불광산의 기념관 본관이 당당한 자태로 나를 맞이했다. 그 앞에는 커다란 사자상과 환하게 웃는 코끼리 조형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에는 초록 정원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여름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입구는 넓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고, ‘또 계단인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걱정은 잠시뿐, 계단 양쪽으로 휠체어가 이용할 수 있는 넓고 완만한 경사로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진짜 환대는 말이 아니라 길 위에 있다.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며 둘러본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였다. 여기저기 놓인 예술적인 조형물들은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건물 외벽의 디테일 하나하나에도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흰 코끼리 가족 조형물 앞에서는 잠시 멈춰 웃음도 지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 코끼리의 모습은 꼭 따뜻한 보호 같았고, 그 앞에서 나는 어쩐지 마음을 내려놓게 되는 기분이었다.

불광산 불타기념관,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가오슝의 대표 명소

불광산 불타기념관은 2011년에 낙성된 이후 국제박물관협회(ICOM)에 정식 회원으로 등록된 세계적인 불교문화 공간이다. 대만 가오슝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신앙과 예술, 교육과 체험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4개의 전당식 주건축과 만여 개에 달하는 신상, 그리고 크고 작은 불전이 산세에 따라 웅장하게 배치된 구조로, 장엄하고 기세가 압도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대만 불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불타기념관 중심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좌불 중 하나인 불광대불이 상징처럼 서 있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본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으며, 법당, 상설 전시관, 그리고 다양한 문화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삼호아동관, 사급탑, 문화광장, 오화탑(불교예식장), 쌍합루(사경·다도 체험) 등도 함께 구성되어 있으며, 본관 뒤편으로는 연못과 정원, 어린이 전시관, 가족극장 등 다양한 공간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종교적 의미를 넘어 누구나 머물며 느낄 수 있는 열린 문화공간이었다.

전시와 기념품의 세계, 로비 안의 문화 공간. ©하석미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대형 문화센터에 온 듯한 인상이었다. 밝고 넓은 로비는 환하게 트여 있었고, 안내소, 식당, 기념품 가게, 갤러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현대적인 조명 아래 전통 불교의 문양과 조형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공간 전체가 마치 예술적인 장식처럼 느껴졌다. 대리석 바닥에 조명이 반사되어 마치 궁전 복도를 천천히 걷는 기분도 들었다.

로비 한쪽에는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았다. 기념품 매장과 전시 공간은 꼭 들러볼 만한 곳이었다. 유리와 옥으로 만들어진 불상, 공작, 코끼리 조형물들은 그 섬세함으로 예술작품이었다. 가격을 보고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지만,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상징성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감동이었다. 염주와 향,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소품들을 바라보며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태양 아래, 부처의 평화를 향해 걷다.

뒤쪽 문으로 나가면 그 중심에는 높이 10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불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 좌불 중 하나로 알려진 이 불상은, 부처의 자비롭고 평화로운 표정을 정교하게 담아내며 보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레 고요하게 만든다. 기념관은 불상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배치되어 있다. 입구를 지나면 양옆으로 8개의 탑이 나란히 이어진 팔보탑 회랑이 펼쳐지며, 각 탑은 불교의 팔정도를 상징한다.

불광산 불타기념관 전경. ©하석미

이곳은 정교하게 설계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모두를 위한 접근성이었다. 휠체어로도 불편 없이 관람이 가능하고, 더운 날씨에도 그늘진 길이 이어져 있었으며, 세심한 안내 표지판과 친절한 조형물들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어느 전시관에서는 불경의 필사본과 함께 실제로 글씨를 써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있었고, 또 다른 공간에서는 불광산의 역사와 세계 각국에 퍼진 사찰 지부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형 전시관, 삼호아동관. ©하석미
푸른 하늘 아래 거대한 불상, 부광대불의 위엄. ©하석미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하게 서 있는 불광산 좌불상을 올려다보니 너무 커 놀라웠다.그곳을 지나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니, 입구 쪽에 계신 안내자분들이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그분들이 건네는 말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표정과 몸짓, 부드러운 취임새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사진 촬영이 안 됩니다"라는 손짓과 함께, 조심스레 초 하나를 내어주셨다.

팔각탑이 둘러싼 고요한 정원. ©하석미

초를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서니, 조용하고 밝은 공간 속에 빛을 머금은 거대한 불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상 앞은 놀랍게도 텅 비어 있었고, 그 고요함은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 하나 없는 그 특별한 순간, 나는 오히려 더욱 경건하게 숨을 골랐다.

기도하는 장소. ©하석미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손을 모아 합장 기도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받은 초를 조용히 놓으며 마음으로 경의를 표했다. 믿는 종교는 다르지만, 그 공간이 전해주는 평온함은 종교를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왔다.

승차 거부, 그리고 다시 길을 찾다

돌아가는 길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모든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고 너무 늦지 않게 시내로 돌아가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정각에 저상버스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버스라 당연히 탈 수 있으리라 믿었고, 기사와 눈을 마주치며 마지막에 천천히 태워줄 거라 기대하고 기다렸다.

다른 승객들이 모두 탄 뒤, 나는 손짓을 섞어 리프트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기사는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내 말엔 아무 반응 없이 문을 닫고 그대로 출발해버렸다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만은 지금껏 내가 다닌 나라 중 무장애 시설이 가장 잘 갖춰져 있고, 차별 없이 여행할 수 있었던 곳이라 생각했기에 이 갑작스러운 승차 거부는 더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차별 버스. ©하석미

다음 버스를 기다리려니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고, 또다시 같은 일을 겪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정류장에 더 머물 수 없을 것 같아 불광산 기념관 안내데스크로 되돌아갔다. 상황을 설명하자 직원도 무척 난감한 표정이었다. 다행히 몇 년 전 대만에 왔을 때 찍어둔 리프트 택시 명함이 있어 그것을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고, 직원은 그 번호로 한참 통화한 끝에 시내로 향하는 리프트 택시를 호출해주었다.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택시를 타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 날의 택시비는 여행 중 가장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래도 여행에는 언제나 변수가 따르고,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과 그 안에서의 배움은 나를 성장시킨다. 여행은 두려움을 가지고 포기하면 그 순간 끝이지만, 그 두려움을 경험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건 다음 여행으로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된다.

마무리하며

불광산에서의 하루는 단지 아름다운 건축과 전시를 보는 시간을 넘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여행의 본질을 되새기는 여정이었다. 넓고 고요한 공간을 천천히 누비며 마주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승차 거부의 순간까지그 모든 경험이 모여 내 안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장애가 있는 여행자에게 여행은 단지 어디를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도달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곳을 경험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길이 열려 있는지, 함께 걸을 수 있는 구조인지, 나의 속도도 배려되는지 이 모든 요소들이 여행의 만족을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광산은, 완전하진 않더라도 모두를 위한 길에 대한 진심 어린 노력을 보여준 공간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불편은, 오히려 또 다른 사람의 배려를 통해 마무리되었다. 단절된 순간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이어졌기에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햇빛과 그늘, 환대와 무심함, 두려움과 회복을 모두 품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여행은 늘 한 발 더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 여정을 떠날 수 있는 용기 또한, 이렇게 조금씩 쌓여간다.

가오슝 불광산 불타기념관 접근성 정보

위치: No.1, Tongling Rd., Dashu District, Kaohsiung City, Taiwan

입장료: 무료

교통: 휠체어 사용자 사전 예약 리프트 택시 이용 추천(리프트택시0931-858-588)

일반 관광객: 셔틀버스 또는 MRT와 연계 버스 이용

접근성: 휠체어 접근 가능 (전 구역 엘리베이터 및 경사로 확보) 전시관 내부 안내문 및 장애인용 화장실 완비, 일부 외부 통로는 경사 있으나 안내 및 휴게 공간 잘 마련

운영시간: 오전 9~ 오후 6(일부 전시관은 다를 수 있음)

주의사항: 저상버스 이용 시 승차 거부 사례가 있었음 리프트 택시 대안 고려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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